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세미나서 존 케네디 박사 생애와 사상 조명
“자유주의 열풍 맞서 성경진리 사수 전력”

황봉환 교수가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세미나 저녁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주강사 윌리엄 맥클라우드 교수가 스코틀랜드의 행동하는 목회자였던 존 케네디 박사를 한국에 소개했다.
황봉환 교수가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세미나 저녁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주강사 윌리엄 맥클라우드 교수가 스코틀랜드의 행동하는 목회자였던 존 케네디 박사를 한국에 소개했다.

스코틀랜드의 행동하는 목회자였던 존 케네디 박사(1819~1894)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원장:서창원 목사, 총신대)은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19세기 위대한 전도자, 설교자인 존 케네디 박사의 생애와 사역’을 주제로 제35기 정기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비대면으로 진행했으며 크게 두 트랙의 강의가 마련됐다. 하나는 주 강사인 윌리엄 맥클라우드 목사(프리처치 신학교 학장 및 조직신학 교수)가 장로교회의 보물을 캐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 장로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스코틀랜드 북중부지역 한 읍내인 딩월서 사역했던 존 케네디 박사의 생애와 사역을 소개했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예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교회 다시 세우기의 일환으로 한국인 강사들을 중심으로 공교회성 회복을 추구하는 강의들을 진행했다.

주 강사인 윌리엄 맥클라우드 목사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신학교 학장으로서 교단의 목회자 후보생들을 기르는 일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지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자이기도 하다. 그가 한국교회에 소개한 존 케네디 박사는 자신의 새교회당 입당예배 때에 와서 설교한 인연이 있다. 존 케네디 목사는 19세기 잉글랜드의 찰스 스펼전 목사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동 시대에 양 지역에서 복음의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 설교자요 전도자였다. 케네디 박사는 1819년 8월 15일에 목회자의 가정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나 애버딘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844년에 목사 안수를 받아 딩월 자유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딩월 자유교회를 바탕으로 해서 하일랜드, 아일랜드 전역을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의 위력을 당당하게 드러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 부임하였을 때 교회 성찬식에 참여한 자는 14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타교회에서 청빙이 있었을 때 그가 떠나는 것을 반대한다고 서명한 교인이 무려 1830명이나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부흥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이후로도 청빙이 수없이 많았으나 성도들의 열렬한 지지와 성원 때문에 당뇨병으로 고생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40년의 목회사역을 딩월 교회에서 감당했다.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 서창원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 서창원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5번 설교를 했으며 영어와 갈릭어(스코틀랜드의 모국어)를 번갈아 가며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의 설교는 철저히 개혁주의 복음에 충실한 것이었다. 강단은 그의 보좌였다고 할 만큼 말씀 선포사역을 사랑하였고 영혼들을 일깨우는 성령의 큰 역사들이 나타났다. 그의 전도 설교는 가는 곳마다 청중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쳐서 그의 사역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돌아왔다. 당시 스코틀랜드 북쪽 지역에서는 성도들의 영적 생활의 소성함과 힘을 얻는 일에 케네디 목사에게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대하였다.

특히 19세기 중후반에 몰아닥친 자유주의 신학의 열풍에 맞서서 개혁주의 신학과 그 전통을 지켜내는 일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당대의 거센 자유주의 신학에 조국이 물들어가는 것을 비통하게 여기며 성경의 위대한 진리들을 지키고자 사력을 다하였다. 특히 유명한 부흥사 디엘 무디와 생키의 대중전도의 단점을 파고 들면서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예배를 지키고자 힘을 다하였다.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를 통한 회심을 목표로 하는 설교는 값싼 믿음주의와 결심주의, 보편속죄론 등으로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로 인해 가짜 회심자들이 늘어나자 구원이 인간의 결단과 확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보는 알미니안주의의 위험성을 띨 수 있다면서 날카롭게 지적했다. 스펄전도 처음에는 무디의 전도활동을 지원하였다가 나중에 철회했는데 케네디 박사의 비판에 힘입은 바 적지 않다. 케네디 목사는 복음 선포와 구원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무디의 찬송가와 악기 사용에 대해서 비판하며 예배의 규정적 원리에 따른 하나님 중심 예배의 순수성을 지켜내고자 힘썼다. 그는 특히 영감된 시편 찬송의 유익함과 필요성, 그리고 무너져가는 주일 성수의 의무를 철저하게 가르쳤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주일 성수를 어기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회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한 청년들이 체포되고 감옥에 갇히게 되자 그들을 공개적으로 지원하고 후원기금까지 모금하여 돕는 일에 나서는 행동하는 설교자이기도 했다. 무디의 대중 전도집회에 대한 칼빈주의적 시각과 고등비평주의로 인해 교회가 받을 악영향에 대해 쏟은 염려와 비판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한편 세미나의 저녁 집회는 황봉환 교수, 박의서 목사, 서창원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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