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홍 목사(서문교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박원홍 목사(서문교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박원홍 목사(서문교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열네 살 소녀 정민이가 일본 순사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된 슬픈 영화 <귀향>. 이 영화는 아픈 소녀들을 치료해준다며 데려가 총을 쏘고 불태워 죽이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세계 각국 60여 개 도시에서 상영하며 일본의 잔악상을 널리 알린 드라마이자, 15세 전후의 소녀들이 끌려가서 기구한 역사를 눈물로 그린 다큐멘터리다. 병자호란 때 청에 잡혀갔다가 환향한 우리 딸들을 ‘화냥년’이라고 조롱만 했지 뼈를 깎는 각성이 없었던 조선은 300년 후 다시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딸들을 빼앗겼다. 그것도 20만 명이나. 11살 소녀도 있었고 238명만 돌아온 통한의 역사다. 단재 신채호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외쳤지만 만시지탄이었다.
최근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가 우리에게 큰 숙제를 던졌다. 그는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계약’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과 일본군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계약을 맺은 것뿐이라며 성매매를 강요당한 성노예가 아니라는 주장을 해, 온 세계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램지어는 1998년 ‘일본법학 미쓰비시 교수’ 직함으로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 교수로 임명된다. 이 자리는 1970년대 미쓰비시가 기부한 150만 달러 기금으로 마련된 자리로 알려졌다. 그는 이미 지난해 3월 “1938년 이후 5년간 100만명이 일본군에 자원입대했다”라는 망언을 한, 돈 앞에 충성하는 자다.
램지어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9:40)라는 말씀을 곱씹게 했다. 평소 ‘친일 사학’이다, ‘식민지 역사학’이다 등으로 눈총 받는 한국 역사학계가 일제히 침묵하고 있음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뿐만 아니라 환호하는 집단도 있으니 더욱 씁쓸하다. 
일제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강조해 파문을 일으킨 <반일 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비유한 류석춘. 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부정해온 정규재 등과 이승만 학당은 램지어를 비판하는 미국 내 학자들에게 “당신의 개입은 이성적 토론을 방해할 뿐이다”는 협박성 메일을 보내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위안부를 일본군과 동지적인 관계라며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한 박유하는 일본군이 중국에 위안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로비를 세웠으니 성노예 수준은 아니었다는 망언으로 램지어를 옹호했다. 시민들이 당연히 집중공격을 하니 여기에 김재련은 “교수님… 감정을 낭비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빕니다”라고 격려했다. 이들의 유유상종이 가관이다. 뉴라이트 교과서에 “위안부는 강제동원된 것이 아닌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판 창녀들”이라는 논지와 맥을 같이 한다.
그나마 일부 정치인이 “왜곡된 주장으로 점철된 논문에 편승해 그를 옹호하는 극우세력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모 정당에서 “대한민국의 품격이 곤두박질쳤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정도가 나라 체면을 유지한 것인가?
일본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독일처럼 반성하지 않는다. 엄청난 자금을 동원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로비 자금을 뿌리면서 역사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 그들의 술책을 무력화시킨 모범적인 사례가 지난 가을 독일에서 있었다.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 의회의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 결정’이 그것이다. 일본의 훼방으로 철거 위기가 있었지만 교민들의 일치된 힘이 승리한 것이다.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교회가 되고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믿는다면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19:40)라는 주의 음성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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