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이 위기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박쥐는 인간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존재다. 그러나 박쥐들의 서식지까지 파괴하는 과도한 개발로 박쥐를 통한 전염병 확산이 일어난 것이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에볼라 바이러스 등 많은 경우가 그렇다.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인류가 자주 접하는 자연재난이란 편리함과 경제성만 앞세운 무분별한 개발이 가져온 부메랑이 아닐 수 없다.
기후환경의 변화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85년 세계기상기구와 유엔환경계획 등이 첫 기후총회를 개최한 이후 2015년 12월 12일에 이르러서야 195개국이 참여해 파리기후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정부는 그 협약을 탈퇴하는 오기를 부리기까지 했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의 영하 40도 혹한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지 싶다.
우리 총회도 이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 듯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 실천은 눈에 띄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는 기후환경변화를 바라보면서 가장 발 빠르게 행동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보존하는 교회의 사명에 눈을 감은 듯하다.
99회 총회에서 기후환경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 활동은 주목받지 못했다. 오히려 지방의 크지 않은 노회가 환경주일을 지키는 등의 노력을 해줘서 그나마 조금은 숨을 쉰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을 어떻게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인간의 탐욕은 당장의 편리함에만 매달려왔다. 그것이 가져올 재난은 계산하지 못하거나 외면한 채 우리의 터전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급작스러운 재난의 확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주저할 수 없다. 교회가 나서서 어떻게 이 재난을 막고, 세상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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