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목사(청암교회)

교육부서는 ‘원팀’ 전문성과 형님 리더십으로 디렉팅하라

이정현 목사(청암교회)
이정현 목사(청암교회)

한국교회 안에 언젠가부터 새로운 포지션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교육디렉터(Education Minister)이다. 교역자 청빙 공고에도 종종 ‘교육디렉터 모집’이라는 문구가 뜬다. 다음세대 사역에 비상이 걸린 교회들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차원에서 신설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교육디렉터’라는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자리부터 만들다보니, 현장에서 좌충우돌이 발생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이를 주창한 담임목사도, 동의한 당회원들도, 교육위원장도, 심지어 디렉터 당사자까지도 그 직책이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지, 교회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과적으로 교육디렉터 제도를 도입한 여러 교회들이 기대했던 효과를 크게 맛보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교회에 교육디렉터 제도가 유행처럼 도입된 배경 몇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첫째로, 다음세대 사역에 도저히 활로가 보이지 않으니 교회들이 구조적으로 변화를 주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다. 둘째로, 국내 중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미국의 성공적인 주일학교 사역을 하는 교회들에 교육디렉터라는 포지션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이를 자신이 섬기는 교회들에 도입한 것이다. 셋째로, 여러 교회들에 교육디렉터 제도가 붐을 일으키자, 다른 교회들도 이를 벤치마킹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미국교회에서 교육디렉터에게는 교육과 관련된 모든 헤드십(headship)이 부여된다. 교육부서의 재정 전반을 총괄하고, 담당 사역자들의 인사에 직접 개입하는 등 교육에 관한 한 담임목사와 다름없는 권한을 갖는다는 뜻이다. 사실상 교회 내부의 각종 커리큘럼, 교육의 디자인과 방향 설정, 다른 교역자들의 돌봄과 성장 부분까지 담당하기도 한다. 연봉 또한 일반 사역자들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고민할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한국교회의 질서와 풍토 속에서 이런 포지션 설정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교회는 대체로 담임목사가 모든 분야에 전권을 갖는 구조로 운영된다. 교회 뿐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질서가 오랜 세월 1인 리더십 시스템으로 유지되어왔기에, 이 권한을 분할하고 이양하는 일이 정서상 통용되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상당수 교회에 장로들에게 주어지는 교육위원장 지위가 있어, 자칫하다가는 교육디렉터와 역할이 충돌하거나 아예 유명무실해질 위험마저 존재한다. 그래서 현장의 교육디렉터들 사이에서는 ‘과연 이 직책이 한국교회에 필요한가?’ ‘이름만 교육디렉터이지 실제로 가진 힘이 전혀 없지 않은가?’ ‘내가 왜 교육디렉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소리가 나오곤 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안에서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교육디렉터의 역할과 자질은 무엇일까?

1. 자신의 부서를 맡으면서, 교육 전체를 디렉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국교회에서 목회자의 역량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사역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사역자가 직접 담당하는 설교와 목양사역이 없으면, 그 역할 자체가 모호해 진다. 결국 교육디렉터에게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없으면 오히려 리더십 발휘가 어려워지고, 마치 다른 부교역자들을 간섭하는 캐릭터로 전락할 수도 있다.

2. 한 부서에 대한 경험이 많을수록 좋다.

결국 교육디렉터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역의 전문성이다. 전문성은 학문연구 실적이나 학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장성이 가장 중요하다. 사역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야 가능하다. 꼭 다양한 부서를 경험할 필요는 없다. 한 부서의 사역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이 오히려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3. 자신의 부서사역을 통해 먼저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부서에서 설교 양육 전도 등을 통해 검증을 받고, 해당 부서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당회원들에게까지 인정을 받은 사역자가 교육디렉터 역할을 맡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4. 타 부서와 사역의 케이스를 공유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교육디렉터를 맡은 이후 교회의 커리큘럼을 전격적으로 조정하거나, 색다른 교육철학을 도입해서 전체 부서를 통합하려는 등의 움직임이 간혹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커리큘럼 조정이나 교육철학 일원화는 엄청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수준과 역량을 가진 전문가가 한국교회 현장에 충분히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일단은 자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 결과물을 다른 부서와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역량을 키우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5. 자기 부서에 대한 성실함과 타부서를 돕는 마음이 커야 한다.

교육디렉터가 자기 부서의 성공과 발전에만 너무 집착하게 되면, 자칫 다른 부서의 사역자 및 구성원들과 반목을 초래하기 쉽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디렉팅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기 부서 사역에 최선을 다하되, 다른 부서 사역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며 현실적 도움을 주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6. 자연스러운 롤 모델 역할 추구하자.

막중한 역할이 주어졌다 해서 다른 사역자들을 지시 일변도로 대한다면 이른바 ‘꼰대 사역자’라 비난 받을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후배 사역자들이 자연스럽게 본받고 따라올 수 있도록 자신의 사역에 탁월하고 성실해야 한다.

7. 담임목사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교육디렉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성이다. 특히 담임목사와의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며 수시로 소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가끔은 교육에 관해 중요한 의견을 관철시켜야 할 때도 있고, 다른 사역자들의 고충을 대신 전달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정도의 대화가 가능하려면 담임목사와의 신뢰관계가 탄탄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담임목사 입장에서도 교육디렉터를 잘 세우는 일은 훌륭한 오른팔을 얻는 것과 다름없다.

8. 장로들과도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당회가 조직된 교회들에서 중요한 리더십인 장로들과도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로들과 만남을 두려워하거나 불편해 해서는 안 된다. 언제라도 함께 식사하거나 티타임을 가지며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필요하다면 장로들에게 교육비전을 당당히 제시하면서, 예산문제 등에 큰소리 칠 수 있는 배짱도 필요하다.

9. 동료 사역자들에 친한 형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은 ‘관계’이다. 교육부서들은 반드시 원팀(one team)으로 움직여야 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묶어서 사역의 최대치를 끌어 올려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형님 리더십’이다. 교육디렉터는 동료 사역자들과 자주 밥 먹고, 차 마시며, 놀 줄도 알아야 한다. 교육을 위해서는 노는 것도 하나의 사역이다. 성격적으로 이런 활동이 맞지 않다며 홀로 앉아 책 읽고 연구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적어도 한국교회 안에서 디렉터 영향력 발휘는 힘들다고 본다.

10. 모든 부서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지는 않다.

교육디렉터라면 모든 부서를 경험해 봐야 하며, 각각의 부서에 대한 전문적 식견까지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사역자를 찾기도 대단히 어렵다. 다만 큰 테두리 안에서 교육사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지, 모든 부서에 대한 전문성을 다 갖출 필요는 없다. 사실 교육의 시스템은 어느 부서나 대부분 비슷하다.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따른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자신이 책임지는 분야를 주 전공으로 삼으며,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편이 낫다.

11. 교육디렉터는 미래 목회에 큰 도움이 되는 자리임을 명심하라.

목회 전반에 교육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교회사역의 70% 이상이 교육과 관련된 사역이다. 단지 주일학교 뿐 아니라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들에도 교육기능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부교역자 시절 교육에 관한 전문성을 습득한 사역자들이 나중에 담임목회를 할 때 훨씬 유리한 것이다. 특히 교육디렉터로서 경험은 훗날 목회 전반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무거운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자리를 사모하며, 더욱 열심히 그 역할에 임하기를 권한다.

12. 도저히 은사가 아니라 판단되면 빨리 그만 두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질 때도 있다. 사역 연수가 올라감에 따라 담당부서 연령대를 올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주일학교 부서를 잘하면 청년부로, 청년부 사역을 잘하면 교구로 올리는 식처럼 말이다. 이런 식의 인사는 자칫 전문성을 살리기는커녕 도리어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교육디렉터를 세움에 있어서, 전문성과 잠재력보다 사역연수나 인간적 무게감을 더 고려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담임목사 본인에게 편한 사람을 그냥 교육디렉터로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회에 어떠한 유익도 없을뿐더러, 사역자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음세대를 향한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세운 자리가 교육디렉터이기에 부디 한국교회의 상황에 맞게 잘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그저 권위적 리더십, 카리스마에 의해 전체를 휘어잡는 형태로 방향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훌륭한 교육디렉터들로 인해 한국교회 다음세대 사역에 큰 부흥이 임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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