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대 목사(늘사랑교회)

권성대 목사(늘사랑교회)
권성대 목사(늘사랑교회)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수십 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주일학교에서 예배 때마다 불렀던 찬송이었다.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당시 주일학교 부장 집사님은 매주 예배에서 이 찬송을 인도하셨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분의 이미지가 아직도 선명하다. 수도 없이 반복해서 불렀던 이 찬송, 그리고 매주 이 찬송을 인도하셨던 부장 집사님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이것은 목회하는 내내 나에게 도전이 된다. 그래서 다시금 흥얼거려 본다. “예수께로 가면….”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시는 날이면 참 고민이 많았다. 너무 가난했던 우리집을 보여드리기가 창피했던 것이다. 어느 해인가 선생님을 맞이하기 위해 어머니는 작은 상 위에 사과를 깎아 한 접시 올려놓고, 옆에는 귀한 설탕 종지를 두셨다. 그리고 상보를 덮어 놓으셨다. 사과를 설탕에 찍어서 드시라는 것이다. 이윽고 선생님은 다녀가셨고 나는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선생님은 사과 한 쪽만 드시고 가셨다. 나머지는 내가 먹으라고 남겨두신 것 같았다. 나에게는 그것이 배려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목사가 된 이후 한동안 성도들을 심방할 때마다 무척 조심스러웠다. 나도 남겨야 하나?

어린 시절 겨울이면 세숫대야에 눈을 채워 넣고 꾹꾹 밟아 뒤집어 대야를 들어 올려 눈벽돌을 찍어냈다. 그 눈벽돌로 눈집을 만들어 삼삼오오 들어가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하며 놀았던 생각이 난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어머니들의 호통소리가 들린다. “이 세숫대야 어떻게 할래?” 세숫대야가 다 찌그러진 것이다. 그 외엔 혼날 일이 없었던 것 같다ㅋㅋ 목회하는 오늘날도 뭔가 신나는 것이 없을까 고민한다. 어머니는 하늘나라 가셨으니 혼날 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동네 형들과 쥐불놀이하며 논두렁을 돌았던 것도 기억난다. 이웃 쥐불놀이 패와 붙으면 옷에 불이 옮겨 붙을 정도로 싸움이 치열했고. 깡통을 돌리다가 놓쳐 논두렁에 불이 붙어 마음 졸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 멀리 논두렁에 정말로 이웃의 쥐불놀이 패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 형들은 작전을 짜느라 긴장감이 돌았다. 나도 덩달아 힘을 주어 깡통을 더 빨리 돌렸다. 목회하는 지금도 영적 싸움에 접어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감이 팽팽해진다. 지금은 내가 컸으니 형들 대신 내가 작전을 세워야 하고 앞서 나가야 한다 ㅎㅎ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