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목사(열린교회)

환란의 터널 끝에서 밝은 빛 되신 하나님을 만납시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시 5:1~2)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없었던 감염병 사태와 경제적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불안도 우리의 마음 둘 곳을 없게 합니다. 예배조차 제대로 드릴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 지, 아직 끝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도는 이러한 때를 어떻게 지나야 할까요?

첫째, 헤아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란을 당하는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헤아리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십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윗은 큰 환란을 만났습니다. 인생의 터널을 만났습니다. 언제 이 터널이 끝날 것인지, 어떻게 해야 끝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절망하는 대신,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간절한 기도를 올립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시 5:1)

이것은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다윗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다윗의 심정이 하나님을 향해 얼마나 간절하고 다급하였는지를 알려줍니다. 악인들에게 에워싸였을 때 다윗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습니다. 이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에메르’는 발화된 언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발화되지 못한 채 그 사람 속에 있는 생각이나 사연, 마음의 뜻까지도 모두 포함합니다. 따라서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다윗의 기도는 자신이 처해 있는 형편, 미처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의 복잡한 모든 사정까지도 헤아려 달라는 외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처 표현하지 못한 우리의 깊은 사정까지도 헤아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시 5:1)

‘나의 심정’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기기’인데, 이는 시인의 ‘묵상’, ‘한숨’, ‘탄식’을 뜻합니다. 따라서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라는 구절은 이렇게도 바꾸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의 탄식하는 마음을 헤아려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의 자녀가 당하는 모든 일들도 헤아리시는 분이십니다. 차마 말로 표현되지 못한 우리의 한숨과 탄식까지도 아십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당하는 일을 알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매우 친밀히 여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은 친밀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붙들게 합니다.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찾게 하고, 우리의 심정을 알아 달라고 하나님께 외치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게 합니다. 우리의 심정을 헤아리실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게 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우리의 심정을 헤아리게 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더 큰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심정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시 5:2)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도 다스리십니다. 온 우주의 움직임이 그분의 손안에 있고, 세상 모든 일이 그분의 눈앞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악인들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다윗은 고통의 때에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누구로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입헌군주국의 왕처럼 아무런 실권 없는 분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온 세상과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작은 삶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역사가 그분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자녀가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라는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신자는 기도할 때에만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터널에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련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부르짖는 소리는 구원을 청하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시인의 마음속에 억제하기 힘든 간절함이 불타고 있음을, 시인의 기도제목이 원한에 사무친 것임을 보여줍니다.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시 5:2)

얼마나 많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리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무엇을 기도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말로 중언부언하며 기도시간을 채우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기도의 깊은 진수에 들어가 보지 못한 채 기도를 그치고 맙니다. 우리에게는 울부짖는 기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은 갈망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자신의 심정을 억누를 수 없어 그는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며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우리가 매일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지 부르짖는 것을 목표로 삼자는 말이 아닙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모아진 그 마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어떤 기도제목을 붙들고 있어서 마음 안에서 피의 펌프질을 하는 것 같은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자는 것입니다.

이 시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참된 기도생활을 하고 있는 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진실성은 기도로 입증됩니다. 그래서 큰 시련을 만났을 때 믿음의 선조들은 자신의 도움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간절한 기도로 드러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터널을 만난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눅 18:7)

인간의 마음은 외적인 환경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환경에 어려움이 찾아오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그의 마음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뜻대로 안 되는 환경을 만나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성도도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다윗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만났습니다. 시련에 가득 찬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에서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다윗은 그 탄식을 사람에게 쏟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쏟아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생사 간에 의지할 분이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터널 끝에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인생의 터널 끝에 계십니까? 그 터널이 너무 오래되어 이제 희망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까?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국은 다윗을 고난 속에서 건지셨습니다. 그분이 시인의 눈물겨운 사정을 들으셨다면 우리의 사정도 헤아리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분 앞에 엎드립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인생의 터널 끝에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터널에서 밝은 빛으로 나오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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