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후 서울 백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장기려 장로님을 찾았다. 글과 사진으로만 대하던 그 분의 작은 체구, 환자를 돌보던 그 분이 병상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내게 보내주신 따뜻한 미소. 산정현교회에서 첫 성탄절 아침에 주어진 특별한 선물은 그 분의 부음이었다. 이번에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들뜨기 쉬운 성탄절에 주님을 섬기다 가신 그 분의 삶에 나를 비춰보았다.

장례식장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 창경궁 앞 도로가 막힐 만큼 몰려든 인파는 그 분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생전에는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다는 추모객도 있었다. “이렇게 죽어야 할 텐데”란 생각을 처음 해봤다. 마석의 모란공원에 그 분을 모셨다. 산정현교회를 섬기는 것이 이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장례식 후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묘비를 만들어 세우기 위해 다시 찾았다.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 이렇게 새겨진 묘비. 춘원은 그를 향해 ‘바보 아니면 성자’라고 했다. 그렇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 내 눈앞에 있는 가난한 이웃의 아픔을 돌보는 것임을 믿었다기 보다 그렇게 바보처럼 자기 자신은 챙기지 못하고 사셨다. 믿는 대로 사신 진정한 크리스천이요, 장로셨다. 천국 가시기까지 북한에 남겨 둔 김봉숙 여사와 5남매를 그리워하셨지만 정부의 상봉 주선 앞에서는 나만 특혜를 누릴 수 없다며 다른 이산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진 장로님. 그런 장로님은 여기서 가난한 이웃을 섬기면 북쪽의 가족들은 하늘 아버지께서 책임질 것임을 굳게 믿으셨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북의 가족들이 잘 살고 있음도 확인했다.

성탄절이면 예수님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하신 그 분이 생각나는 것은 내게 주신 복이 분명하다. 그래서 매년 성탄절 헌금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했고, 교회 재정을 세상을 향해 여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교회가 된 것이다.

우리 교회가 매년 1월에 라오스 무료진료, 11월엔 캄보디아 ‘닥터장 의료캠프’, 연중 계속 국내 몇 곳의 무료진료를 비롯, 아이티(Haiti)라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그레이스 클리닉’을 시작한 것도 그런 빚진 마음의 열매요, 그 분의 남겨둔 몫을 수행하는 것이다. 나에게 성탄절은 장기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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