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거리의 형제들이 다시 일어서는 땀과 눈물 함께 합니다”
[성탄특집] “거리의 형제들이 다시 일어서는 땀과 눈물 함께 합니다”
‘노숙인 쉼터지기’ 김용직 장로
  • 조준영 기자
  • 승인 2020.12.22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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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누추한 곳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을 닮고 싶은 계절이다. 노숙인 쉼터지기 김용직 장로와 아내 한기숙 집사가 쉼터 앞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로뎀쉼터’란 이름은 성남산성교회 배성환 담임목사가 지었다.
낮고 누추한 곳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을 닮고 싶은 계절이다. 노숙인 쉼터지기 김용직 장로와 아내 한기숙 집사가 쉼터 앞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로뎀쉼터’란 이름은 성남산성교회 배성환 담임목사가 지었다.

“그때가 2월이었는데,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더라고요. 첫날은 너무 힘들어서 결국 새벽 3시에 집으로 왔어요. 노숙인들이 오랫동안 씻지를 못해 냄새도 심하고, 나중에는 제 옷에도 냄새가 나더라고요.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신문지 한 장을 덮고 잤어요. 처음에는 웬 사람인가 경계하던 눈초리도 차츰 줄어들고, 그렇게 사흘 밤을 함께 지내면서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용직 장로(60세·성남산성교회)가 노숙인들을 가슴으로 품기 시작한 것은 지하철 신흥역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면서부터다. 그가 섬기고 있는 성남산성교회(배성환 목사)는 수년 전부터 매주 목요일 교회 근처 신흥역에서 노숙인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노숙인들의 고단한 삶을 보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노숙인들을 더 잘 섬길 수 있을까 고민했고, 새벽기도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노숙인들의 삶을 더 이해하고 싶어 노숙 체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는 ‘그들과 같이 살아라’는 감동이 왔다. 꿈도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술에 찌들어 살며, 오갈 데 없어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저도 젊은 시절 고생도 많이 하고, 술에 취해 방황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다 술에 취한 채로 어떤 교회 저녁예배에 갔었는데, 그때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을 듣고 고꾸라져 통곡하고 하나님을 믿게 됐어요. 노숙인 형제들이 이제라도 하나님을 알고 천국에 가면 좋겠다 싶었죠.”

김용직 장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쉼터를 찾아 노숙인 출신 형제들을 돌보고 있다. 쉼터 거실에서 김 장로가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김용직 장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쉼터를 찾아 노숙인 출신 형제들을 돌보고 있다. 쉼터 거실에서 김 장로가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쉼터 돌봐

쉼터 마련은 고스란히 사비가 드는 일이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때마침 그가 소유하고 있던 작은 빌라가 매매돼, 그 돈으로 성남시 상대원동 연립주택에 방 3칸짜리 작은 쉼터를 마련했다. 쉼터는 함께 기거하기로 한 노숙인 형제들이 직접 둘러보고 고르도록 했다.

쉼터에서 살기로 한 형제들에게는 공동생활이니만큼 쉼터 내에서 술과 담배를 금하도록 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조건을 달지는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했다. 형제들이 쉼터에서 건강을 되찾고, 행복을 누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잘 믿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5명의 노숙인 출신 형제들이 2019년 4월 쉼터에서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장로는 집에서 한 걸음 거리인 쉼터를 아침저녁으로 찾아 형제들을 돌봤고, 묵묵히 남편의 노숙인 섬김을 지지해준 아내 한기숙 집사도 수시로 쉼터를 찾아 찌개를 끓이고, 반찬거리를 사다 날랐다.

김 장로가 노숙인 쉼터를 마련했다는 소식에 도움의 손길도 나타났다. 그는 쉼터를 기도하면서 ‘주위에 도와달라는 말을 안 하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기뻐하셨고, 그래서 돕는 손길을 더하셨다. 교인들과 지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쉼터에 필요한 가전제품과 생활용품들을 선물했다. 특별히 그가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수도권장로회연합회는 김치냉장고와 가구 등 많은 물품들을 지원했다. 연합회는 또 쉼터를 연합회가 함께 섬기는 쉼터로 명명하고, 지금까지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 장로의 사랑과 섬김에 쉼터 형제들은 하루하루 따뜻한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 4년 6개월 가량 노숙인 생활을 했던 박순만(64세·가명) 씨는 “급식 타러 여기저기 옮겨 다닐 필요도 없고, 따뜻한 방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감사를 표했다. 종로3가에서 유명한 보석가공사였던 박 씨는 쉼터에 들어온 후로 술도 줄이고, 공공근로 일도 하고 있다며, “코로나가 없어지면 다시 보석가공 일을 하려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2019년 성탄절 전날 신흥역 지하도에서 김 장로를 처음 만났다는 이철우(55세·가명) 씨는 “쉼터에 들어오라는 장로님 말씀을 듣고 너무 좋았다”며 “이제는 나도 성실하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가정을 꾸리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용직 장로와 수도권장로회연합회 임원들이 지난해 한 형제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김용직 장로와 수도권장로회연합회 임원들이 지난해 한 형제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하늘나라로 배웅

쉼터는 노숙인 출신 형제들에게 안식처이자 자립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김 장로는 오랜 노숙 생활로 말소된 형제들의 주민등록증을 일일이 복원시켰다. 한 형제는 30년 만에 복원된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는 김 장로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김 장로는 “그 형제는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에 노령연금까지 합해 95만원 가량을 받게 돼, 지금은 근처에 방을 마련해 독립해서 잘 살고 있다”며 “쉼터가 형제들에게 자립의 꿈을 키워주는 공간이 돼 더욱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장로는 형제들의 예배 출석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쉼터 형제들은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거기다 새벽기도회까지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화요일에는 산성교회 전도사나 수도권장로회연합회 장로들과 함께 성경공부도 한다. 자신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김 장로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노숙인 출신 형제들의 몸과 영혼이 회복되는 것을 보는 것은 김 장로에게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눈물겨운 일도 있었다. 지난해 쉼터에서 함께 생활하던 한 형제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데 이어 지난 11월에도 한 형제가 소천했다. 지난해 소천한 형제 장례식은 김 장로와 수도권장로회연합회 장로들이 상주가 돼 장례를 도맡았다.

“쉼터를 마련하기 전에 산성교회 주차장에 딸린 방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3개월 동안 살았는데, 그때부터 같이 생활했던 형제예요. 라면을 좋아해서 같이 자주 끓여먹곤 했었죠. 노숙을 20년 했는데, 쉼터 생활이 편했던지 살도 찌고 많이 행복해했어요.”

김 장로는 누구보다도 마음이 착했던 그 형제를 기억하며, “인생의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생활하다 가셨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이면 신흥역에서 노숙인들을 섬기는 김 장로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쉼터에서 생활할 형제들을 몇몇 더 늘일 계획이다. 코로나19로 형제들을 들이지는 못했지만, 이미 제2쉼터도 지난 4월에 사비를 들여 개소한 상태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지하도를 전전하는 노숙인들은 더 많아질 것 같아요. 헐벗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듯이, 한국교회가 노숙인들을 섬기는 사역을 더 많이 감당하면 좋겠어요.”

불편해도, 냄새가 배도, 마다않고 손 내밀 때 거기에 열매가 맺힌다. 성탄의 계절, 노숙인들을 가슴에 품고 더불어 살아가는 김 장로의 담담한 바람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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