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순례자의 섬’ 기점도와 소악도] 쉬며 재촉하며 ‘열두 사도의 길’ 따라가다 특별한 선물 얻다
[성탄특집/ ‘순례자의 섬’ 기점도와 소악도] 쉬며 재촉하며 ‘열두 사도의 길’ 따라가다 특별한 선물 얻다
  • 정재영 기자
  • 승인 2020.12.2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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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단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만은 아니다. 그분이 이 땅의 낮고 천한 자리에 찾아와 머무시며, 온 몸으로 당하신 고난과 아픔까지 함께 묵상하는 절기이다. 그리고 주님이 걸으신 사랑과 용서의 그 길을 나도 따라가겠다는 다짐을 실천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바로 그 길을 가장 앞서 간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이다.
한반도 서남부의 외딴 섬에 이 열두 제자의 삶을 짚어보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는 명상과 순례코스가 생겼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성탄절을 즈음해 이 특별한 공간으로의 여행에 독자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참고로 국내외 예술가들이 참여해 섬 안에 세운 열두 개의 건축 작품들에는 ‘안드레아’ ‘토마스’ ‘마태오’ 등으로 공식 표시되어있지만, 본 기사에서는 한글 개역개정판의 번역에 맞춰 사도들의 이름을 표기했음을 미리 알려둔다. <편집자 주>

이른 겨울아침 송공항터미널.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커다란 광고판 하나에 잠시 머문다. 베드로, 요한, 마태, 도마 등등. 누군가에게는 친근하고 누군가에게는 알듯말듯한 이름들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금세 성경 속 열 두 사도 명단인 것을 알아챈다. 뒤이어 곧바로 ‘이 작은 항구에 대체 왜 이 이름들이?’라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2018년부터 ‘순례자의 섬’이라는 별명을 새로 얻은 기점도와 소악도에는 약 60세대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특이한 사실은 이들 중 인구로는 약 80%, 가구로는 90% 이상이 기독교인들이라는 점이다. 오랜 세월 이들은 복음의 터전으로 자신의 섬을 가꾸어왔다.

특히 전라남도가 추진한 ‘가고 싶은 섬’ 공모사업에 신안군 기점도·소악도의 ‘기적의 순례길’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두 섬에는 여러 건축물들이 세워지는 등 최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고요하던 낙도에 관광객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 섬들로 가는 길목인 압해도의 송공항 또한 더욱 붐비게 됐다.

항구를 떠난 배는 다섯 개의 기착지를 거쳐 한 시간 만에 대기점도 선착장에 닿는다. 이미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던 아담한 건물 하나가 하선하는 방문자들을 반긴다. <베드로> 혹은 <건강의 집>으로 불리는 둥근 지붕의 그리스풍 예배당과 앙증맞은 크기의 종탑은 ‘순례자의 섬’들을 일주하는 출발점이다.

서너 명쯤 앉으면 꽉 차겠다싶은 크기의 예배당 안에 들어가, 아늑한 분위기 속에 잠시 오늘의 여행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낮은 기도걸상, 바다풍경이 살짝 내다보이는 좁은 창, 그리고 벽을 장식한 야생화 그림과 천정의 조그만 샹들리에가 눈에 띈다.

<베드로>를 빠져나와 해변 길을 타고 ‘순례자의 길’이라 적힌 이정표대로 따라 가다보면 도보로 10분 안팎의 지점마다 <안드레(생각하는 집)> <야고보(그리움의 집)> <요한(생명평화의 집)>이라는 간판을 단 키 작은 건물들이 잇달아 나타난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수많은 이적을 목격한 두 집안 제자 형제들의 오순도순 정겨운 모습들이 연상된다.

<안드레> 앞에서 멈춰 바다 건너 병풍도의 풍경을 전망하고 나면, <야고보>에서는 숲속 오두막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천문대가 연상되는 <요한>을 향해 남촌마을을 지날 때면, 동네 어르신들 놀라지 않도록 발걸음을 살살 옮길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 예배당들이 비교적 소박한 양식을 띠고 있었다면,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로 건너가는 길목의 <빌립(행복의 집)>에서부터 <바돌로매(감사의 집)> <도마(인연의 집)> <마태(기쁨의 집)>까지는 미학적 요소가 한껏 가미되어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복음서에서 이들 넷이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진 제자들로 묘사된 것처럼, 각 건물마다 독특한 색채와 구도를 담았다.

프랑스 남부풍의 포물선 지붕으로 멋을 낸 <빌립>, 연꽃처럼 저수지 한가운데 둥둥 뜬 어여쁜 모습으로 건축된 <바돌로매>, 하얀 벽 그리고 코발트 빛깔 출입문과 창문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도마>, 화려한 러시아정교회 예배당을 본 뜬 <마태> 등은 조금씩 지쳐가던 순례자들에게 작은 기쁨과 활력을 안겨준다.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는 노두길을 또 하나 넘어가면 소악도로 진입한다. 다음 코스로 향하는 길가에서 ‘자랑께’ ‘쉬랑께’라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손짓하는 간판이 나타난다. 소악교회 예배당과 나란히 설치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의 이름이자, 잠시 심신을 충전하는 휴게공간이다. 이용요금은 따로 없다. 각자 사정대로 기부함에 정성을 표하면 충분하다.

소악교회 임병진 목사는 이곳에서 나그네들을 맞으며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신앙 개척자 문준경 전도사를 비롯해 섬에 얽힌 이야기이며 열 두 사도 스토리 등을 차분하고 친절하게 들려준다. 도란도란 대화하다보면 짧은 만남으로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 더 깊은 이야기를 청하는 이들도 생긴다. 때문에 임 목사는 종종 밤늦도록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곤 한다.

하지만 순례자들은 늦기 전에 남은 행군을 마쳐야 한다. 소악도 본섬의 <작은 야고보(소원의 집)>, 진섬의 <다대오(칭찬의 집)>와 <시몬(사랑의 집)> 풍경은 그야말로 단순하고 꾸밈이 없다. 태양과 바람과 별빛까지 자연의 온갖 요소들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전체 예배당의 공통된 특징이지만, 이 세 건축물은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작은 야고보>가 허름한 외관과 마룻바닥을 지닌 시골 예배당처럼 느껴진다면, <다대오>는 아이들 그림 속 같은 천진난만함을 자아내며, <시몬>은 지붕과 두 개의 벽체로만 꾸며 완벽히 개방된 공간을 선보인다. 

열두 제자 중에서도 가장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을 듣지만, 마침내는 다른 사도와 마찬가지로 자기 사명을 다했던 그들의 삶과도 닮아있다.

이제 단 하나 <가룟 유다(지혜의 집)>만이 남아있다. 종점에 도달하여 순례를 마쳤다는 신호로 고딕 양식의 예배당에 설치된 종을 12번 치려면 ‘딴섬’이라는 더 작은 섬으로 건너가야 하지만, 다른 노두길과는 달리 뭍이 드러나는 시간이 많지 않아 몹시 운이 좋은 이들에게만 접근이 허락된다.

건물의 이름처럼 실패한 제자의 삶이라면, 차라리 멀리서 잠깐 응시하다 경계로 삼고 돌아서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당장 손에 잡히는 이 세상의 성취에 연연하기보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길,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앞서 가신 그 길을 잃지 말고 따라가는 것이 훨씬 소중하니 말이다.

제대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게 여행이라 했다. ‘순례자의 섬’ 역시 거기에 머물자고 찾아간 것은 아닐 터, 부디 짧은 여정에서 얻은 선물들이 있다면 오래 곱씹으며 우리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으면 족하다.

순례자의 섬 가는 길

12사도 예배당이 세워진 후 기점도와 소악도는 물론 바로 옆 병풍도까지 합해 ‘순례자의 섬(Pilgrim’s Island)’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순례자의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안군 압해면 송공항에서 출발해 하루 4차례 이들 섬으로 왕복하는 배편을 이용하면 된다. 동절기 기준으로 첫 배는 오전 6시 30분에, 마지막 배는 오후 3시 10분에 출항한다. 계절마다 약간씩 운항시간이 조절되니 정확한 시각을 해진해운(061-279-4222)으로 사전 확인하는 게 좋다.

기점도와 소악도는 크게는 두 개의 섬이지만 기점도의 경우는 ‘대기점도’와 ‘소기점도’로 구분되고, 소악도 역시 본섬과 진섬 딴섬 등 여러 작은 섬들로 나뉘어져 있다. 여행계획을 세울 때 병풍도출장소(061-240-8621)를 통해 간조시간대를 미리 알아보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순례자의 섬에서 지향하는 여행은 ‘자발적 가난, 즐거운 불편’이다. 첫 번째 코스인 <베드로의 집>에서 마지막 코스 <가룟 유다의 집>까지 거리가 총 12km이니, 3시간 안팎이면 넉넉히 도보순례를 마칠 수 있다. 자전거 순례를 원한다면 대기점도 선착장 대여소(010-6612-5239)에서 전동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닐 수도 있다.

압해도 송공항에서 기점도와 소악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압해도 송공항에서 기점도와 소악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도보나 자전거 여행으로 계획을 짰다면 여객선을 타고 가다 순례코스가 시작되는 대기점도 선착장에서 내리는 것이 편리하다. 불가피하게 차량을 가지고 가야 한다면 소악도 선착장에서 내려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편이 유리하다. 

좋은 경치와 공기를 즐기며 하룻밤 숙식을 원한다면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061-246-1245)나, 소악교회가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한 ‘자랑께 쉬랑께’(010-4247-4714)를 이용하면 된다. 소악교회에서는 여행에 도움이 될 갖가지 영상과 도서자료를 제공하며, 성수기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문화공연도 마련한다. 사전예약이 필수.

여행 출발 전, 혹은 여정을 오가며 올해 출간된 이동원 목사의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한 열두 사도 이야기>(두란노)를 탐독한다면 더 풍부하고 의미 있는 순례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문준경의 ‘고무신행전’ 감동 느껴보세요”

임병진 목사의 ‘소악도 그리고 문준경’

임병진 목사(58세)가 소악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지는 고작 1년에서 조금 더 지난 정도이다. 하지만 마치 이 섬에 오기 위해서 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인생과 소악도 사이에는 기막히게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이 존재해왔다.

임병진 목사(오른쪽)에게 소악도는 또 다른 비전과 사명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준 터전이다.
임병진 목사(오른쪽)에게 소악도는 또 다른 비전과 사명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준 터전이다.

20년 전 예수아카데미라는 단체를 세워 기독교영성사역과 문화사역을 꾸준히 펼쳐오던 임 목사는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던 무렵, 한국교회 역사에 초석을 놓은 인물들에 대한 본격 탐구를 시작했다. 위대한 섬 전도자이자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도 그렇게 만났다.

자신의 근거지인 경기도에서 전남 신안까지 수백 차례나 오가며 조사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천국의 섬> <문준경에게 길을 묻다> <고무신의 노래> 등의 작품을 책 다큐멘터리 연극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내놓았다. 증도가 오늘날 대표적 한국기독교 순례지이자 ‘한국의 가고 싶은 여행지 100선’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게 된 데는 임 목사의 공로도 적지 않았다.

이런 전력을 알게 된 강원도로부터 새로운 관광테마 개발 의뢰를 받고, 임 목사가 착수한 사업이 바로 ‘열두 사도 순례길’이었다. 강원도 일대의 명승지를 도보로 답사하며, 성경 속 열두 사도가 걸었던 생애와 신앙을 묵상할 수 있도록 상징적 공간들을 중간 기점에 세워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코스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아쉽게도 추진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바람에, 원대한 꿈을 가슴에 묻어두어야 했던 임 목사는 2년 전 귀가 번쩍 틔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전라남도의 한 섬에서 바로 자신이 구상했던 ‘열두 사도 순례길’을 조성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자세히 알고 보니 다른 섬도 아니고 증도에서 지척인 소악도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렇게 다시 인생항로에서 문준경 전도사님과 마주치는구나 싶었던 것이죠. 실제로 당초 ‘문준경 전도사 순례길’로 제안했던 계획을 관광산업 확장성 때문에 ‘열두 사도 순례길’로 바꾼 것이라고도 하더군요.”

증도와 소악도는 행정구역상으로 똑같은 신안군 증도면에 속하는 데다가 정기적으로 두 섬을 오가는 배편이 있을 정도로 왕래가 잦다. 문 전도사가 세운 증도의 교회들을 통해 이웃 병풍도에 교회가 세워지고, 다시 병풍도교회를 통해 소악교회가 세워진 역사도 있으니 정말로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소악도와 이웃 기점도에 열 두 사도의 이름을 딴 건축물을 세운 전라남도와 신안군 입장에서는 이를 활용한 관광테마를 살릴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시설을 관리하며 지속적인 종교적·문화적 콘텐츠를 제공해 줄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임 목사는 강원도 ‘열두 사도 순례길’ 프로젝트에 함께 했던 공무원과 함께 자원하여 소악도로 거처를 옮겼다. 마침 강단이 오랫동안 빈 채로 지내던 소악교회에서도 임 목사의 부임을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소악교회 부임 후 임 목사는 마을공동조합 운영활동과 대외 홍보활동을 비롯해, 문준경 전도사 스토리를 소재로 한 문화공연 개최 등 자신의 경험 및 재능을 살린 전방위적 활약을 펼쳤다. 교회당에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설치하며 순례길을 오가는 나그네들의 쉼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만난 불신자가 복음을 듣고 회심하는 일화들도 생겨났다.

지난 1년 동안 관광산업에 치명적인 코로나19 사태 중에도 기점·소악도에는 매달 1000~1500명의 방문자들이 찾는 성과가 나타났다. 관광객 중 상당수는 기독교 순례자들이지만 타종교인이나 신앙이 없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임 목사는 내심 이들을 향한 사역비전도 품고 있다.

“단순히 관광과 체험을 위한 여행만이 아니라 열 두 제자가 걸어간 ‘사도행전’, 그리고 이들의 뒤를 따른 문준경 전도사의 ‘고무신행전’에 진정한 감동을 느끼는 여행이 되도록 이곳에 영적 분위기를 더하고 싶습니다. 섬을 찾아오는 나그네들을 예수님을 대하듯 따뜻한 가슴으로 대접하며, 그들의 가슴에 생명의 복음을 심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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