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독일 통일 이전에 풀다(Fulda)라는 지역의 한 가정집을 방문했다. 놀랍게도 집 안에서 동서독의 경계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집안의 서독 쪽은 깨끗했지만, 동독 쪽은 먼지가 10cm이상 수북이 쌓여있었다. 주인에게 반쪽 난 집에서 살면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선을 넘어 가고 싶은 유혹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물었다. 어느 누구도 감시하지 않아 종종 동독 쪽으로 건너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다.
에릭 프롬은 “인간의 의식적이나 무의식적 심리와 행동의 밑바닥에는 분리를 극복하여 하나가 되려는 동기가 있다”라고 했는데, 어쩌면 갈라진 조국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독특한 위치에 서있던 그 집과 주인에게서 발현되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다.
12월이면 1년을 되돌아보는 결산을 하고, 새해에 할 일들을 계획한다. 필자에게도 꼭 이루고 싶은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는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경계선처럼 쌓아놓은 막힌 담을 허물어 화합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며 섬기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화평’으로 소개한다. 헬라어 ‘에이레네’(화평)는 히브리어 ‘샬롬’(평화)과 동의어다. 이 구절에서 ‘화평’이라는 단어는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의 적대감이 사라진 상태를 가리킨다. ‘평화의 왕’인 예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선민의식(성전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 율법)이라는 담을 허무시고, 화목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엡 2:16)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도록 가로막던 담(죄)을 허무시고(용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일이다.(히 4:16)
나 같은 죄인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셨으니, 이제는 나 역시 주변의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계 2:19,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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