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찬영 목사(광주중앙교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성도는 행복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3)

석찬영 목사(광주중앙교회)
석찬영 목사(광주중앙교회)

이제 열흘만 있으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기쁜 성탄절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상이 병들고 죽어가는 이 시대에, 우리 주님이 탄생하셨다는 참 기쁨의 좋은 소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복된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죄와 사망,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은 죄와 사망, 가난과 저주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만 오셨을까요? 만일 이런 예수님만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절반 밖에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임마누엘’ 하러 오신 예수님을 누리지 못하고,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쪽으로만 치우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계시된 메시야의 이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라는 이름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그런데 이 이름보다 더 먼저 구약 때부터 지어진 이름이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고,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탄의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임마누엘’이라고 하겠습니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을 통해 우리에게 시종일관 선포하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복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든든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다 떠나간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재물과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다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너는 내 것이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붙들고 나아가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임마누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는 순간부터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나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몸을 낮추시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비천한 곳으로 내려오신 사건이 임마누엘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중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나 파선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풍랑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위로하며 용기를 주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은 고난의 자리로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와 같은 임마누엘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고난의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눈물과 한숨짓는 절망 속으로 찾아오십니다. 앞이 캄캄한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위로하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위로하시며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신 권능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어둠을 물러가게 하십니다. 이 놀라운 임마누엘의 은총이 성탄의 축복으로 여러분의 삶에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 오 임마누엘’ 찬송 104장은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이 주님의 임재를 소원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험악한 시대를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 캄캄하고 답답한 인생의 한가운데서 힘들어할 때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친히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러분은 위로와 소망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임마누엘의 은총이 여러분의 삶의 자리마다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자리에는 회복이 일어납니다. 병든 자가 치유를 받습니다. 묶인 자가 자유함을 얻습니다. 우는 자가 크게 웃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된 만남의 축복이 바로 임마누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리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본문 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주님께서 하신 약속과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이 약속은 이미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700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무슨 일이 없었겠습니까? 유대가 망하고, 세계 여러 제국이 망하고, 온갖 일들이 700년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제국이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끝내 이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성취되고 완성됩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오래 전에 주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지치고 상한 영혼들이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낙심하고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고 그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을 살게 할 것입니다. 위로하며 용기를 얻게 할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약속은 구원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사건은 구원의 사건입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자가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복된 소식이요, 성탄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성도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임마누엘. 함께하시는 하나님. 절망하는 자에게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 모든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성탄을 기다리는 성도 여러분과 가정, 일터, 삶의 자리마다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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