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교, 교육기회 확대와 고등교육 보편화에 큰 역할했다”
“기독교학교, 교육기회 확대와 고등교육 보편화에 큰 역할했다”
박상진 교수 “기독교사학, 국가 대신해 해방 직후 초등교육 정착·발전 이끌어”
박혜진 박사 “해외선교부 학교에 집중된 연구, 한국교회 설립 학교로 확장돼야”
  • 이미영 기자
  • 승인 2020.12.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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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학교 교육 운동사’ 학술대회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소장:박상진)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11월 21일 온라인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해 ‘한국 기독교학교교육 운동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역사 흐름에 따라 개화기-일제강점기-해방 이후-현재 시점 순서로 진행된 이날 대회를 통해 회원들은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대화하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먼저 박혜진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의 장로교와 감리교를 중심으로 기독교학교 설립 과정과 그 의의를 고찰했다. 박 박사는 “미국 북장로회와 북감리회는 한국에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개신교 선교회이며, 한국선교를 주도했던 장로회와 감리회 등 주류 교단 선교부는 선교 거점 도시에 대규모의 스테이션을 설치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개 선교부들은 각 지역의 스테이션에 기독교학교를 설립했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온라인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해 ‘한국 기독교학교교육 운동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진행하며 회원들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온라인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해 ‘한국 기독교학교교육 운동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진행하며 회원들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한국 근대교육의 효시는 1885년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이다. 장로교의 언더우드는 고아원을 설립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1905년 경신학당이 되었다. 1886년 이화여학당과 1887년 정동여학당 등이 설립됐고, 지방에서도 기독교계 학교들이 설립됐다. 이들 학교에서는 성경과목을 일반과목에 포함시켜 복음전도의 기회를 삼았다.

박 박사는 “장로교 학교 통계를 살펴보면, 1907년 대부흥운동 이후부터 1912년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1912년부터 1916년까지는 증가세가 일부 주춤했다”며 이는 1910년 일제강점 이후 총독부의 교육정책에 따라 발표된 1911년 ‘사립학교규칙’, 1915년 ‘개정사립학교규칙’ 등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1930년대에 교회에서 설립한 많은 학교들이 문을 닫게 된 데 대해서는 “선교부에서 교회 부속 학교운영비를 50% 정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선교부에서 경영하는 학교들을 제외하고 많은 학교들이 폐쇄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이후 교인 자녀의 교육을 위해 정규 학교보다는 점차 교회 주일학교 확대와 발전에 힘을 쏟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 박사는 “그동안 자료의 한계 등으로 주로 선교부 경영 학교들에 연구가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며 “한국교회가 설립·운영한 학교들과 각 지역 교회들이 초기부터 설립한 수많은 학교들의 명단을 계속 확인하고 연구해 나가는 것이 한국기독교학교 교육의 역사 복원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박상진 교수(장신대 기독교교육과)는 해방 이후 기독교사립학교 팽창 요인을 분석했다. 박 교수는 “오늘날 기독교사립학교 대부분은 해방 이후 미군정기부터 시작해 한국전쟁을 지난 후 설립되었다”며 해방 이후 사립학교 팽창 중 중등교육의 팽창에 주목해 유상 중등교육의 확장 현상을 살펴보고, 이로 인해 사학 의존도가 높아진 배경과 요인을 분석했다.

박 교수는 사립학교의 역사 시기를 ①해방 직후~1960년까지 ‘정초기’ ②1961년~고교평준화 제도가 실시된 1974년까지 ‘확산기’ ③1975년~2016년까지 ‘전환기’ ④2017년 이후 사학 공영화 정책에 따른 ‘갈등기’로 나누어 분석했다.

해방 직후 미 군정기에서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정부가 국민학교를 의무교육으로 정하고 모든 국민이 초등교육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초등학교 설립에 주력하면서 활발하게 기독교사립학교를 설립됐다. 특히 중등교육 이상 교육에 대해서는 국가재정의 한계로 사립학교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장려한 것이 사립학교 증가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박 교수는 “광복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적령인구의 완전 취학과 고등교육의 보편화는 사학의 기여 덕분”이라며 “국가 재정이 구민의 교육기회를 확충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만큼, 사학이 교육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일”이라고 분석했다.

1945년 이후, 특히 1961년부터 1975년까지 학령인구의 급증과 교육열 확산, 국가의 사학 장려 정책 및 고교평준화 등에 따라 불과 15년 동안 기독교사립학교 128개가 설립되어, 해방 이후 현재까지 75년간 설립된 전체 기독교사립학교 256개교의 50%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고교평준화정책 이후부터 기독교사립학교 설립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특히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사학 공영화 정책’을 추진한 이후 기독교사립학교 또한 ‘준공립’화된 상태에서 기독교적 건학이념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박 교수는 “건학이념에 따른 운영이 필수적인 종교계 사립학교에 대한 별도의 교육정책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연구는 오늘날 사학 의존도가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는 사립학교의 공영화 문제, 사립학교의 정체성 상실 문제, 종교계 사립학교의 파행적 운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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