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교회 가는 것을 싫어하셨다. 어느 주일, 할아버지는 “나락을 말리라”는 지엄한 분부를 내리셨다. 하지만 나락을 보고 있던 아버지는 종소리가 들리자 결국 예배당으로 행했다. 그런데 하필 그 때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나락 걱정과 무서운 할아버지께 혼날 걱정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겁이 나서 집에 가지 못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예배당 종각에 올라가있던 아버지의 귀에 “남진아!”하며 애타게 부르는 음성이 들렸고, 아버지는 “엄니, 나 여기 있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아버지께 듣고 난 후 “종각에는 왜 올라가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높은 곳이라 하나님과 가까우니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시리라고 생각했다”고 답하셨다. 지금도 높은 곳에 오를 때면 아버지의 그 얘기가 귓가에 맴돈다.
1960대에는 깊은 산 속 기도원 집회에 참석했다가, 바위 사이에서 밤새 기도하는 성도가 많았다. 중세시대 수도원이나, 한국의 기도원이 산에 많았던 것은 아마도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산들이 개인이나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일과 관련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고 요구하셨던 곳이 모리아에 있는 한 산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는 사명을 주신 곳도 ‘하나님의 산’인 시내산이었다.(출 3장) 출애굽기 20장에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이 나온다. 신명기 34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느보산에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는 것만 허락하셨고, 그 후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었다.
이처럼 성경 속에서 산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에게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선포하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장소로 나타난다. 시편 121편의 기자는 성전에 올라가면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노래했다. 다윗은 시편 133편 3절에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그런가하면 시내산에서 언약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과, 그 산 아래에서 우상을 만든 결과로 죽임을 당한 3000명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출 32:28) 이에 대해 신명기 9장 8절은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산’인 시내산에서 구원의 언약과 진노의 심판이 함께 이뤄지는 것을 되새겨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 지 스스로 점검하고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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