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찬 목사(대전중앙교회)

고석찬 목사(대전중앙교회)
고석찬 목사(대전중앙교회)

나무를 자르면 나타나는 동심원 모양의 띠를 가리켜 ‘나이테’(annual ring)라고 한다. 나이테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띠를 가지고 나무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나이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테는 나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띠이기도 하지만, 기후와 나무 성장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처럼 4계절이 분명한 지역의 나무들은 봄과 여름에 열심히 자라다가 가을이 되면 성장이 둔화되고 겨울이 되면 성장이 멈추기 때문에 1년에 아주 확실한 나이테 하나를 만들어 낸다.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열대 지역에서는 일 년 내내 성장하기 때문에 이렇다 할 나이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만 우기와 건기의 성장 차이에 따라 나이테와 비슷한 생장륜(growth ring)이 만들어지곤 한다. 이것을 나이테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나무의 나이를 추정하는데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 나이테의 시작과 끝이 봄이나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러한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겨울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 시베리아의 추운 바람이 한반도를 덮게 되면 사람들은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된다. 대지가 얼어붙어 농사도 지을 수 없다. 만물의 성장이 멈추어 버린다. 그저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그 겨울이 나무에게 진한 나이테를 선물로 주는 계절인 것이다.
우리 인생의 겨울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는 봄의 신선함 속에서 싹이 돋아나듯 삶에 무엇인가가 꿈틀대는 때도 있고, 여름의 무성함처럼 생명의 기운이 우리를 감싸며 사는 것 같을 때도 있으며, 가을의 풍성함이 흘러 넘쳐 ‘이 보다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할 때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런 풍성함이 우리 삶의 나이테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타인의 아픔을 끌어안으며,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것, 이것은 겨울을 지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어려운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반기독교적인 영향들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의 영향으로 재정적으로나 사역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미래가 불분명한 상태이다. 게다가 건강과 안전이 우상시 될 정도로 변해가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 되고 있다. 교회마다 매서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정말 얼어붙은 동토를 지나는 듯한 심정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인생의 겨울이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느 누구도 인생의 겨울을 피해갈 수는 없다. 어차피 통과해야 하는 겨울인 것이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인생의 나이테는 겨울에 시작해서 겨울에 마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고보가 “너희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한 말씀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경험하는 온갖 믿음의 시련이 우리에게 인내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약 1:3)
그렇기에 이 시간에 갑자기 불어닥친 겨울을 탓하기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인생의 겨울을 지나며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과, 이 땅의 젊은이들, 그리고 국민들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이 땅을 위해 수고했던 경력과 교회의 업적과 과거의 자랑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터치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머지않아 혹독했던 겨울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우리 안에 새겨진 선명하고 아름다운 나이테를 바라보면서 이 또한 은혜였음으로 고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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