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자세로 국가 의무 다해”
김병희 목사(대구 서변제일교회)

6·25 당시 십자군은 신앙인의 자세로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한 이들이라고 설명하는 김병희 목사(대구 서변제일교회·대신대역사신학 교수).
6·25 당시 십자군은 신앙인의 자세로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한 이들이라고 설명하는 김병희 목사(대구 서변제일교회·대신대역사신학 교수).

6·25 당시 십자군에 참여한 이들은 대한민국을 무신론자들로부터 수호하겠다는 목적 아래 자원하였다. 중세시대의 십자군전쟁과 같이 이슬람과 인민군을 동일시하여 성전(聖戰)으로 인식하였으며, 죽든지 살든지 나라를 위해 믿는 사람들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나라가 망해 가고 있는데 믿는 사람이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는 구국일념으로 자원하는 이가 많았다. 이왕에 군입대할 것 같으면 십자군에 가라는 가족들의 권유를 받고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교회, 가족, 친척 단위로 여러 명이 동시에 지원하였다. 교회 단위로 여러 명이 지원하는 경우에는 담임목사의 축복기도와 성도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십자군 본부가 있는 대구서문교회로 걸어서 오기도 하였다. 그들은 포화 속에서도 성경을 가슴에 지니고 읽고 기도했으며, 군가인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351장)를 수천 번 부르며 전투에 참여했다.

십자군은 교회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쳤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그들은 전쟁의 두려움과 포화 속에서도 변함없이 신앙인의 자세를 견지한 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였다.

이러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휴전선을 경계로 다시 대치하게 되었고, 통일을 더욱 어렵게 하는 국제적 조건이 조성되어 통일은 남한과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로 전환되었다. 이는 남북한 사이에 적대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분단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 독재체제가 강화되어 친미적인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한국교회의 경우 전쟁을 거치면서 북한 출신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반공주의가 유입·정착되었으며, 미국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친미성향이 강화됐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는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통일운동을 주도하고 갈등과 반목의 시대를 지나 공존과 화해, 평화의 길을 여는 통일한국을 이루어 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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