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번역과 신학 해설 및 신앙 적용] (33)죽음, 부활, 심판
[특별기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번역과 신학 해설 및 신앙 적용] (33)죽음, 부활, 심판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 기독신문
  • 승인 2020.10.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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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평정 떨치고 항상 깨어 주 예수 오심을 준비하라

 1. 죽음 후의 상태

사람들의 몸은 죽음 후에 흙으로 돌아가 부패를 보지만 그들의 영혼은 죽지도 자지도 않는바, 죽지 않는 존재를 지니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즉시 돌아간다. 의로운 자들의 영혼은 그때 거룩함 가운데 완전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 속으로 받아져 그곳에서 빛과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들 몸의 충만한 구속을 기다린다. 그리고 사악한 자들의 영혼은 지옥에 던져져 그곳에서 고초와 극한 어두움 가운데 머물고 큰 날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갇힌다. 사람의 몸으로부터 분리된 영혼을 위한 이 두 자리 외에 그 어떤 것도 성경은 인정하지 않는다.”(32.1)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모든 사람은 각기 그 존재의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다. 각자는 모태에서 잉태될 때부터 죽음의 때까지는 영혼과 몸으로 존재하고, ‘중간 상태’(status intermediatus, the intermediate state)라고 일컫는 죽음 이후부터 부활의 때까지는 영혼으로만 존재한다.

죽음은 영혼과 몸의 분리를 의미한다. 죽음의 때에 몸은 처음 지음을 받은 흙으로 돌아가 썩음을 보게 되고 영혼은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창 2:17, 3:19, 행 13:36, 전 12:7).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으나(마 10:28), 자기 백성의 영혼은 받으신다(행 7:59).

죽음은 각 사람의 삶의 연장선 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삶의 멸절’이 아니라 ‘삶의 전이’를 의미한다. 죽음 이후 사람은 영혼과 몸의 지상의 삶을 그치고 영혼만의 천상의 삶을 시작한다. 영혼은 불멸하는 독자적 실체로서 몸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몸을 떠난 후에도 인격적인 활동을 계속한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보듯이, 사람은 죽음 후에도 고통과 위로를 느끼며 어떤 간구를 하며 어떤 활동을 한다(눅 16:19~31). 죽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나타나 말한 것이나(삼상 28:7~20), 죽은 모세와 엘리야가 변형된 예수와 더불어 말한 것이(마 17:3) 그 방증이 된다.

죽음 후, 신자들의 영혼은 즉시 온전한 거룩함에 이르고(히 12:23),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가 그랬듯이(눅 23:43),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며(고후 5:8, 빌 1:23), 그의 빛과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고후 3:18, 4:6, 고전 13:12), 몸의 충만한 속량을 기다린다(롬 8:23).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것은(막 16:19, 롬 8:34, 히 1:3, 10:12) 그를 믿는 자들이 그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심이었다(살전 4:16, 5:10, 계 14:13, 행 7:55~56).

반면, 믿지 않는 자들은 죽음 후 즉시 영혼이 지옥에 던져져 형벌 아래에 심판 날까지 갇히게 된다(눅 12:5, 벧후 2:9).

2.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

마지막 날에 발견되기를 살아 있는 자들은 죽지 않고 변화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죽은 자들은 자기 자신의 몸으로 일으켜질 것이다. 그 몸은 비록 다른 성질들을 지니지만 결코 다른 몸이 아니며 자기의 영혼에 영원히 연합될 것이다. 불의한 자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권능에 의해 욕됨에 이르는 일으킴을 받을 것이고 의로운 자들의 몸은 그의 영에 의해 영예에 이르는 일으킴을 받아 그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에 적합하게 될 것이다.(32.2~3)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으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때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그를 영접하며 그와 항상 함께 있게 된다(마 25:31, 살전 4:14~17, 고전 15:51~52).

그때는 우리의 낮은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 것이니(빌 3:21, 고전 50:51), 썩을 것과 욕된 것과 약한 것으로 심어 썩지 아니할 것과 영광스러운 것과 강한 것으로, 즉 육의 몸으로 심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서(고전 15:41~44, 52),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된다(고전 15:53). 그러나 몸의 ‘성질’(qualitas, quality)에는 변화가 있게 되지만, 그 ‘동일성’(identitas, identity)은 유지된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다. 그 중 ‘첫째 부활’ 혹은 ‘생명의 부활’이라고 칭하는 ‘의인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둘째 사망인 불못의 다스림을 받지 아니하고 ‘영생’에 들어가며, ‘심판의 부활’이라고 칭하는 ‘악인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불못에 던져져 ‘영벌’에 들어간다(요 5:28~29, 행 24:15, 계 20:5~6, 14, 마 25:46).

3. 마지막 심판의 큰 위로

하나님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 가운데 세상을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다. 그리스도께 모든 권세와 심판이 아버지로부터 주어졌다. 그날에 배교한 천사들이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지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 그들의 생각, , 행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선하거나 악하거나 간에 몸으로 있을 때 그들이 행한 것에 따라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 날을 지정한 목적은 택함 받은 자들의 영원한 구원에 있어서 그의 자비의 영광의 현시와 사악하고 불순종하는 유기된 자들의 저주에 있어서 그의 의의 현시를 위함이다. 왜냐하면 그때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 주의 현존으로부터 나올 기쁨과 위안의 충만함을 받을 것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사악한 자들은 영원한 고초에 던져지고 주의 현존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권세의 영광으로부터 영원한 파멸로 형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저지시킴과 경건한 자들의 그들의 역경에 있어서 더 큰 위로 둘 모두를 위하여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이라는 감화를 확실하게 받도록 하시듯, 사람들이 어느 시에 주가 올 것인지 모르므로 모든 육체적인 평정을 떨쳐버리고 항상 깨어있어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말하게끔 줄곧 준비되도록 그 날이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아멘(33.1-3).

마지막 때 구원의 수가 다 차면 배교한 천사들과(유 1:6, 벧후 2:4)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 대한 심판이 있다(딤후 4:1). 아버지는 심판을 아들에게 다 맡기셨다(요 5:22). 이는 하나님의 아들(神子)이 사람의 아들(人子)이 되셔서 모든 대속의 의를 다 이루신, 그 ‘인자됨’으로 말미암는다(요 5:27).

마지막 흰 보좌의 심판을 통하여 큰 자나 작은 자 할 것 없이 자기 말과 행위와 공적을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고 불못에 던져지게 되나(마 12:36~37, 고후 5:10, 고전 3:13~15, 계 20:12~15, 21: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값없이 주어지는 생명수 샘물을 마시고 하나님의 ‘백성’이자 ‘아들’이자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된다(계 13:8, 20:11, 15, 21:3, 6~7, 9, 27).

이 심판으로, 영벌에 들어가는 유기된 자들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현시하는 반면(롬 2:5~6; 살후 1:7~8), 영생에 들어가는 택함 받은 자들은 무조건적 은혜로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영광’을 현시한다(롬 9:22~23, 엡 2:4~7). 그러므로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놀라운 위로’(consolatio eximia, a wonderful consolation)가 된다.(칼빈, <기독교 강요>, 2.16.18) 그들을 위하여 자기를 속죄(贖罪)와 속건(贖愆)과 화목(和睦)의 대속물로 주신(사 53:10, 요일 2:2, 4:10, 딤전 2:60), 일찍이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그들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계 5:9, 12; 13:8).

우리는 그리스도와 형제요 자매 된 하나님의 자녀로서(히 2:11),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롬 6:5), 그와 함께 장사되고, 함께 살아나고, 함께 일으킴을 받고, 함께 하늘에 앉힘을 받는바(롬 6:4, 엡 2:5~6), 그와 함께 상속자 되고, 함께 지체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 되어(엡 3:6),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도 받고(롬 8:17), 그 안에서 죽고(계 14:13, 살전 4:16), 죽음 후 그와 함께 거하며(고후 5:8, 빌 1:23), 부활하여 그를 영접하고 그와 항상 함께 있으며(살전 4:17), 그의 심판대 앞에서 그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로서 의인의 심판을 받고 영생에 들어가며(고후 5:10, 마 25:46, 계 20:15)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가 등불이 되시는 빛 가운데로 다니며 그의 얼굴을 보고 그를 섬긴다(계 21:23~24, 27, 22:3~4).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유일하고 참되니,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리 주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고전 16:22). 아멘, 아멘.

영원히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Soli Deo gloria in aeternum)!


※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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