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회의 책벌은 온전하게 세우기 위한 교정의 수단돼야

1. 교회의 말씀 사역에 주어진 열쇠의 권세   

주 예수는 자기 교회의 왕과 머리로서 교회의 통치를 위하여 국가 위정자와 구별되는 교회 직분자들의 손을 지정하셨다. 이 직분자들에게 천국의 열쇠가 맡겨졌으니 그 능력 가운데 그들 각각은 죄를 단속하고 사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말씀과 책벌 두 가지 모두로 그 나라를 닫으며, 회개하는 죄인들에게는 이치에 닿으면 복음의 사역으로, 그리고 책벌로부터의 방면으로 그 나라를 여는 권세를 가진다.”(30.1~2)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회의 재판권은 ‘권징’(勸懲, disciplina, discipline)을 통한 책벌(責罰, censurae, censures)을 의미하는 바, 이는 ‘치리’(治理)라고도 일컫는 영적인 제도로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열쇠의 권세(potestas clavium, power of the keys)에 부합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체들로 삼는 몸 된 교회의 머리이시자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로서 하나님의 우편에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다스리신다(엡 1:20~23, 계 17:14, 행 2:33). 그는 아버지가 자기에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살리시니(요 6:39),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요 5:24).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인자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막 2:10). 그를 믿는 자는, 그 안에서, 그의 이름으로, 그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다(막 2:5, 골 1:14, 행 2:38, 10:43, 요일 2:12, 엡 1:7, 히 9:22). 하나님은 육체는 물론 영혼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시니, 인자는 자기를 믿는 자에게는 천국의 문을 여시며 자기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지옥의 문을 여신다. 천국의 열쇠도, 사망과 음부의 열쇠도, 다윗의 왕좌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정사를 맡은(사 9:6~7, 눅 17:20), 오직 그에게 있다(계 1:18).

이 열쇠의 권세가 신약 교회의 형성기 동안 사도들에게, 이제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에게 부여되었다(엡 4:11, 고전 12:28, 딤전 5:17).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매고 푸는 권세(potestas ligandi et solvendi, power of binding and loosing)는 세상이 아니라 교회에, 사람이 아니라 복음에 부여된다. 베드로에게 이 권세가 부여된 것은 그 자신을 반석 삼지 않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그의 고백을 반석 삼아, 교회를 세우시리라는 주님의 약속이 주어졌을 때였다.(마 16:16, 18~19) 이 권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인,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그 몸을 세우기 위하여 작용한다.(마 18:18, 20; 엡 4:12)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고 그 말씀을 듣는 자에게는 복이 있게 하셨고 그것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게 하셨다(마 10:7, 12~15). 이 권세는 복음을 듣고 믿어 죄 사함의 회개에 이르게 하는 구령의 권세이자, 복음을 배척하여 하나님의 진노에 이르게 하는 심판의 권세이다. 그것은 책벌의 방면과 함께 천국문을 여는 열쇠이자, 책벌과 함께 지옥문을 여는 열쇠이다.

교회의 사법권은 세속적 사법권과는 달리 세상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검을 사용하여(고후 10:4~6) 성도를 돌이켜 온전하게 하는 데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전 5:4~5). 로마가톨릭은 칼의 권세를 휘둘렀지만, 주님은 이방의 습속으로 성도의 행실을 판단하는 것을 금하셨다(마 20:25~26, 막 10:42~44, 눅 22:25~26). 우리의 무기는 육체에 있지 않다(고후 10:4).

2. 권징의 목적과 시행: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움

교회의 책벌은 범법하는 형제들을 교정하고 얻으며, 유사한 범법들로부터 다른 자들을 막으며, 전체 덩어리를 오염시킬 수 있는 그 누룩을 제거해 내며, 그리스도의 영예와 복음의 거룩한 고백을 변호하며, 만약 하나님의 언약과 그것의 인호들이 악명 높고 완고한 범법자들에 의해서 더러워지는 참고 있다면 공정히 교회에 떨어질 하나님의 진노를 막기 위하여 필요하다. 이 목적들을 더 잘 얻기 위하여 교회의 직분자들은 범죄의 본성과 사람의 과오에 따라서 권계, 얼마 동안 주의 만찬의 성례 참여 정지, 교회로부터의 제명을 추진해야 한다.(30.3~4)

권징의 목적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데(建德, aedificatio, edification) 있다(롬 15:2, 고전 14:26). 이는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하게 하려는 것이며,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얻으려는 것이다. 교회의 책벌은 그것이 권계, 수찬정지, 제명, 그 무엇이든 간에 교회에서 영구적으로 축출하기 위한 저주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 교회로 돌이켜 그 지체로서 온전하게 세우기 위한 교정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칼빈이 말했듯이 권징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대하며 날뛰는 사람들을 억제하는 ‘굴레’, 게으른 사람들을 약동시키는 ‘박차’, 타락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영의 온유함으로 징계하는 ‘아버지의 매’와 같다.(<기독교 강요> 4.12.1)

권징의 절차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 그것은 직분을 맡은 자의 권고에서 시작해서 교회의 공적 권위의 치리로 끝나야 한다(마 18:15~17). 은밀한 사적인 죄는 이런 절차를 지켜야 하나 공공연히 드러난 공적인 죄는 즉시 모든 사람 앞에서 엄숙히 꾸짖어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딤전 5:20). 그리하여 악을 행하는 자를 회개에 이르게 하고(살후 3:14, 고전 5:5), 적은 누룩이 온 회중에 퍼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전 5:5, 9, 11). 마치 종기와 같은 성도를 몸 된 교회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있지만(골 1:24, 엡 5:25~26), 언제든 절제의 법을 지켜야 한다(갈 6:1, 고후 2:7~8, 살후 3:15). 가라지를 뽑으려다 곡식을 다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마 13:29).

3. 대회와 총회의 성격과 권한

교회의 더 나은 통치와 더 나아간 건덕을 위하여 통상 대회 혹은 총회라고 불리는 모임들이 있어야 한다. 믿음에 대한 논쟁들과 양심에 대한 사건들을 결정하는 것, 하나님에 대한 공적 예배와 그의 교회에 대한 통치를 보다 잘 규율하기 위한 규칙들과 지침들을 정하는 것, 실정(失政)이 있는 경우에 탄원을 받는 것과 그것을 권위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은 행정상 대회와 총회에 속한다. 이러한 명령들과 결정들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면, 그것들과 그 말씀의 일치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권세 때문에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정해진 규례로서, 경배와 복종 가운데 받아들여져야 한다. 사도시대 이후의 모든 대회와 총회는 일반적이거나 개별적이거나 간에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많은 회의들이 오류를 범해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신앙이나 실천의 규범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이 두 가지 모두를 위한 도움의 방편으로서 사용되어야 한다. 대회와 총회는 오직 교회적인 것만 다루고 결론지어야 한다. 비상한 사건들의 경우에 겸손한 탄원의 방법으로 하거나 국가 위정자에 의해 요구되는 경우에 양심의 만족을 위한 충고의 방법으로 하는 외에는 나라를 돌보는 국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31.1~4)

장로교는 성경적 정치 구조(政體)를 취하는 바, 체제의 통일성을 견지하고 행정의 유기성을 제고하며 사법적 판단에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개별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sessio, session), 어느 지역의 개별 교회들로 구성된 대회(synodus, synod), 교단에 속한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는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된 총회(concilium, council)를 둔다.

대회와 총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의 예배와 행정 및 성도의 신앙과 양심과 행실에 관한 사안들을 처리하고, 관련된 법안들을 제정·공포·시행하며, 위반이 있을 경우 재판을 하는 것을 주기능으로 삼는다. 초대교회에서 모세의 법과 할례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때 사도들과 장로들이 예루살렘에서 회의를 열고 규례들을 수립하여 안디옥 교회 등 여러 교회들에 알리고 순종하도록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행 15:1~29, 16:4, 21:17~26).

대회와 총회는 교회와 다름없이 그리스도가 친히 모퉁잇돌이 되시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곧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움을 받아야 하고(엡 2:20),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신앙과 실천을 돕는 방편이 될지언정 그것들의 규범(fidei aut praxeos norma, rule of faith or practice)은 될 수 없으며(고후 1:24),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것을 다룸으로써 성경적 직무를 충실히 감당하여야 한다(눅 12:13~14, 요 18:36, 마 22:21). 총회의 헌법이 성경 위에 있거나 성경을 대체할 수 없으며, 그 거룩한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단지 ‘법을 지킴’(遵法)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덕을 세움’(建德)이 그 이상의 가치로서 추구되어야 한다.


※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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