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영국에서 개혁주의 신학과 삶을 따르는 두 부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언약도요, 하나는 청교도였다. 언약도는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청교도는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이 되었다. 언약도와 청교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국교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그러면 언약도와 청교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언약도는 순수한 교회운동을 하였다. 국왕의 교회 통치를 거부하고 국교를 반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교회론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오로지 기도하고 선교하며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다.

청교도는 경건하고 순결한 삶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성경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 정치에 참여를 했다. 그래서 청교도의 후예가 미국으로 가서 오늘의 미국 정치와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청교도의 신앙적 세계관과 가치관 위에 세워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회는 언약도적 신앙과 청교도적 정신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언약도와 청교도가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을 때 쇠퇴했듯이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언약도의 후예 역시 본래의 정신과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지나친 교권 다툼을 하다보니까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도 분열하고 쇠락을 하지 않았던가. 청교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다보니까 외형적인 경건과 엄격한 계율에만 갇히다보니 진정한 순결과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청교도가 배출한 정치인들도 세속적인 대세나 문화와 타협을 해 버리고 말았다.

이 시대의 목회자도 정치적 은사를 받은 분은 교단과 교계에서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언약도적 신앙과 청교도적 세계관을 가지고 경건한 삶을 살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 만일 자신의 독선적 신앙이 정치적으로 투사가 되면 정말 큰일이다. 우리 교단은 더더욱 그렇다. 정말 경건한 삶을 살면서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를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결코 사익이나 개인의 생각을 앞세우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자신의 이념과 욕망이 투사되면 서로 공격하고 싸우며 분열시키는 정치를 하게 된다.

목회자의 정치 참여는 더더욱 그렇다. C.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에 보면 일곱 번째 편지에 마귀는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기독교 신앙의 본질보다는 어떤 애국심이나 평화주의 같은 이념을 가까이하게 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이념과 신념을 위에 두고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이념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와 목회자끼리는 이념과 이념이 충돌하고 이즘과 이즘이 갈등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 문제로 얼마나 심각한 갈등과 편 가르기를 하고 있는가. 이렇게 개인의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을 앞세우면 교회 공익이나 교회 세움을 이룰 수 없다. 특별히 우리 교단이 이런 일부터 정리해야 한다.

총회를 코앞에 두고 있다. 부디 자신의 논리와 사상만을 앞세우지 말고 진정한 언약도의 정신과 청교도의 신앙적 가치를 이어받는 총회를 하자. 칼빈주의 신앙과 신학 위에서 경건한 삶을 살면서 화합과 세움의 총회를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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