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라는 용어가 익숙해졌다. 어느새 일상이 된 듯하다. 출근 등의 필수적인 경우 외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친구들과의 모임, 밥 먹기조차 위험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어지간하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 답답하고 우울해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거리두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하나님의 자녀로 또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주님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 채 세상과는 너무 밀착되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제는 세상과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밀어넣으시는 주님의 간섭은 아닐까?

거리를 두어 멀어져야 할 대상과는 너무 가까웠던 적은 없을까? 가까이 해야 할 대상과는 너무 멀어지다 못해 등진 것은 아닐까? 이것은 반성이 아닌 발견 같았다. 이미 나의 삶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 제자리 찾아가야지. 주님과 밀착하여 틈새를 없애야지. 그래서 생각이나 행동이 말씀 그 자체일 수 있으면 좋겠다.

거리를 둬야 할 세상적 가치와 문화, 삶의 방식은 좀 불편하고 손해일지언정 멀어져야겠다. 그렇다. 세상에 존재해야 할 그리스도인이고 교회지만 그 생김새는 분명히 달라야 하는데 너무 닮아 버렸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다. 말씀과 다르다 싶어 세상과 멀어지면 어느새 그 세상은 내 손 안으로 들어와 내가 주도할 수 있었다. 반대로 세상 놓치지 않으려고 말씀을 등진 채 가까이 갔더니 그래서 내 손에 잡힌 것 같은데 내 정체는 모호해졌고, 주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를 잃었었다.

세상은 정치적 ‘밀당’을 한다. 철저하게 이익을 위해 거리를 둘지 가까이 할지를 판단한다. 옳고 그름은 판단 기준이 아닌 세상이다. 그러나 난 하나님의 사람. 손해 보면 어떤가. 당장 잃으면 어떤가. 주님과 가까우면 언제든지 주님이 채우시고 잃은 것 같은 그것들을 상상할 수 없는 큰 것으로 안겨주시는데.

거리두기! 나를 향한 깨우침이었다. 나를 찾아 정체를 바로 세우게 한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세상에 그리고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놓치지 않아야 할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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