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갯길의 교회 ‘복음 불꽃’ 고을로 번져가다
마로덕 선교사가 전한 천국복음, 고비마다 공동체 지켜 … 역사관 완성, 선교사명 회복

120년이라는 세월의 더께 아래서 다시 깨어나 사명을 회복하는 중인 완주 위봉교회의 예배당과 종탑.
120년이라는 세월의 더께 아래서 다시 깨어나 사명을 회복하는 중인 완주 위봉교회의 예배당과 종탑.

2018년 성탄절 전날, 안양호 목사는 예배당 리모델링을 위한 철거작업 중이었다. 낡은 강대상 바닥을 뜯어내던 그의 손끝에 무엇인가 낯선 물체가 잡혔다. 조심조심 꺼내보니 빛바랜 책 두 권이 이끌려나왔다.

한 권의 표지에는 <위봉교회 당회록>이라는 글자와 ‘1907. 3. 25’라는 숫자가, 다른 한 권의 표지에는 <위봉교회 세례교인 명부>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위봉교회의 역사 한 자락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이처럼 극적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위봉교회 역사의 시작에는 마로덕(馬路德)이라는 재미난 이름을 가진 서양인 선교사가 존재한다. 위봉교회를 비롯해 여러 유서 깊은 교회의 연배 있는 성도들에게는 ‘루터 올리버 맥커친’이라는 본명보다 한국식으로 지은 세 글자의 이름이 훨씬 친숙한 인물이다.

위봉교회 설립자인 마로덕 선교사.
위봉교회 설립자인 마로덕 선교사.

그를 추모하며 어느 시인이 써내려간 한시에는 이 이름의 절묘한 풀이가 담겨있다. ‘어찌하여 이름이 마로덕이던가(何如作名馬路德), 올라탄 말 재촉하며 포교하러 다닌 덕이리라(促馬行路布敎德)’ 전북 동남부의 산악지대를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해 무려 8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한 그의 위대한 자취는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60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다.

과연 앞의 구절처럼 마로덕은 19세기가 20세기로 바뀌는 시점이던 어느 날, 바튼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 말에 올라탄 모습으로 홀연히 위봉마을에 나타났다.

위봉마을은 완주군 소양면과 동상면이 만나는 산악지대에서도 정점을 이루는 고지에 위치해있다. 조선 숙종 때는 위봉산성이 축조됐으며, 동학농민혁명 때는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과 위패 등이 이곳으로 옮겨온 역사가 있다. 전주8경 중 하나로 꼽히는 위봉폭포도 지척에 있다.

불교의 위세가 유난히 강한 동네였지만 파란 눈의 선교사가 전한 천국복음은 사람들의 영혼에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다. 믿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고, 처음에는 산성 주변 토굴에서 모여 예배하던 이들이 1905년 마을에 초가예배당을 건축하며 위봉교회는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위봉교회 역사와 마로덕 선교사 사적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준비 중인 위봉교회 역사전시실.
위봉교회 역사와 마로덕 선교사 사적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준비 중인 위봉교회 역사전시실.

세례교인 명부에는 날이 갈수록 이름이 쌓여갔다. 충성스러운 일꾼들 덕택에 교회의 지경도 넓어졌다. 점점 넓은 예배당을 필요로 했지만, 그때마다 교우들의 아낌없는 헌신으로 거뜬하게 해결해냈다.

산 위의 동네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복음의 불꽃은 인근 수많은 고을들로 번져갔다. 사방에서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 하늘의 가르침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각자의 동네에서 다시 교회를 세우며, 위봉교회는 일대에서 어머니교회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물론 좋았던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한 차례, 6·25가 발발한 1950년에 또 한 차례 교회 문을 일시적으로 닫아야 했던 아픈 순간을 겪었다.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된 시기부터는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동네방네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단감 송이들처럼 넉넉했던 마을은 어느새 50호도 남지 않았다. 당연히 교세까지 위축됐다.

2년 전 예배당 리모델링 중 옛 강대상 아래서 발견된 위봉교회 당회록.
2년 전 예배당 리모델링 중 옛 강대상 아래서 발견된 위봉교회 당회록.

그럼에도 그루터기처럼 남은 이들이 고비마다 꿋꿋이 극복해내며 위봉교회는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2000년 5월 11일에는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당시 교회를 담임하던 이정연 목사와 서남이 장로 등이 예배당 앞에 기념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고기성 목사에 이어 부임한 안양호 목사는 120년이라는 세월 속으로 묻혀가던 위봉교회에 현실 위의 존재감을 불어넣는 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그 결과 더 이상 이름만 남은 교회가 아닌 사명과 비전이 현재진행형인 사역공동체로 다시 회복되는 중이다.

작은 산골마을에서 벗어나 전주 시내 한복판으로까지 전도사역을 확장하는 과감함을 보여주는가 하면, 고령층이 대부분인 지역에서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기타교실 같은 문화사역을 도입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던 역사를 되찾기 위해 마로덕 선교사의 행적을 비롯한, 위봉교회의 크고 작은 사적들을 찾아내는 데에도 온 교회가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 중에 뜻밖의 발견으로 얻은 수확이 바로 옛 강대상 밑에 누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숨겨두었던 옛 당회록과 세례교인 명부였던 것이다.

동역자들과 지인들의 협력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전주 양정교회(박재신 목사)처럼 물심양면 후원을 아끼지 않은 형제교회들을 만나 교회당과 사택까지 깔끔히 수리하는 공사를 무사히 마친 안 목사는 이제 새로 단장한 본당 2층을 역사전시실로 꾸미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2000년에 건립된 위봉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비.
2000년에 건립된 위봉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비.

역사전시실에는 이미 마로덕 선교사의 활동기에 널리 사용되었던 풍금 타자기 등 여러 물품들과, 위봉마을 사람들의 오랜 자취가 담긴 옛 생활도구 등이 자리를 잡았다. 현재 준비 중인 마로덕 선교사의 옛 행적 및 위봉교회 역사 관련 전시자료들과 이제는 교회의 최고 보물이 된 당회록 및 세례교인 명부까지 전시를 마치면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역사관이 완성된다.

바로 그 공간에서 위봉교회는 제105회 총회의 허락을 받아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식을 갖게 될 것이다. 같은 뿌리를 가진 수만교회 학동교회 신월교회 등이 동시에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로 지정되는 일 또한 위봉교회로서는 반가운 경사이다.

안양호 목사는 “올해 마로덕 선교사 60주기를 맞아 추모하는 자리를 그분이 설립한 교회들 그리고 관련단체들과 함께 마련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면서 “앞으로도 선교사님의 정신을 계승해 새로운 시대 선교사명에 헌신하는 위봉교회가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안양호 목사(사진 오른쪽)와 홍삼인 사모 그리고 아들 안요셉 씨는 위봉마을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주역들이다.
안양호 목사(사진 오른쪽)와 홍삼인 사모 그리고 아들 안요셉 씨는 위봉마을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주역들이다.

부지런한 목사, 마을을 바꾸다
위봉마을에 새바람 불어넣는 안양호 목사

올 여름 예배당 리모델링을 마무리 한 안양호 목사는 여전히 작업복 차림이다. 창고처럼 쓰이며 사실상 방치 상태였던 옛 사택을 고쳐 동네사람들의 휴식공간 및 탁구교실로 개조하는 공사에 다시 돌입한 것이다.

성도들만 예배를 위해 드나들던 위봉교회 경내는 요즘 온갖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끌벅적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부임하자마자 시작한 기타교실을 비롯해, 이웃들과 공동으로 경작하는 텃밭과 예쁘게 단장한 정원 등등 더불어 나누고 누리는 자리들을 한껏 늘려놓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손수 트랙터 등 여러 농기구들을 구해 주민들의 밭을 대신 갈아주는가 하면, 주민센터와 협력해 근사한 해바라기꽃밭까지 마을에 조성하는 등 봉사에도 앞장선다. 한반도 모양으로 가꾼 해바라기꽃밭은 앞으로 위봉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훌륭한 볼거리로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부지런한 담임목사 때문에 위봉교회 성도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안양호 목사가 동역자들과 함께 전주한옥마을 옆 남문광장에서 정기적으로 전도집회를 열 때면, 성도들도 따라가 곁에서 팝콘을 튀기거나 각자 재배한 농작물들로 음식을 만들어 주변을 지나는 시민·관광객들과 나눈다. 본인들도 사역의 일원으로 활약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이처럼 재미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안양호 목사와 홍삼인 사모 그리고 아들 안요셉 씨는 영상에 담아 널리 소개한다. 세 식구가 유튜브에 개설한 ‘쌍둥이엄마TV’는 구독자가 약 17만 명에 이를 정도로 쏠쏠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유명세를 바탕으로 금년 4월에는 완주군으로부터 홍보대사 위촉까지 받았다.

안양호 목사는 “120년 전 위봉마을에 복음 들고 찾아와 영적 새 바람을 일으켰던 마로덕 선교사님처럼, 저희들도 그 신앙의 후예로서 이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교회가 신선한 변화의 중심에 서서 마을을 인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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