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는 많은 목회자가 선호하는 설교의 주제로,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다양한 교훈을 전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율법사의 질문을 받고, 답변으로 먼저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다.
율법에 기초한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이웃’이란 같은 언약백성인 사람들만 의미했기 때문에, 이방인은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도 이웃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필자는 설교할 때마다 ‘누가 내 이웃인가’를 알고 선을 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영생은 율법사의 관심인 율법도 아니고, 행함의 대가도 아닌 은혜로 얻는다는 점을 예수님은 알려주셨다. 또한 율법을 머리로만 아는 것에 머물지 말고,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셨다. 비록 사마리아인이라 하더라도 그를 이웃으로 생각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셨다.
노벨평화상의 첫 번째 수상자는 스위스의 ‘헨리 듀넌트’(불어로는 ‘앙리 뒤낭’)이었다. 은행장 출신으로서 적십자사를 창립한 인물이다. 사실 그는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 사업을 크게 확장하려는 꿈을 가졌다. 하필 그가 나폴레옹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에 공교롭게도 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전쟁터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피비린내 나는 지옥 같은 전장에서 수많은 시체와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을 목격하고 나서 그는 부상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황제를 만나 큰 사업을 펼치겠다는 꿈을 접는 대신 ‘이 땅에 폭력과 전쟁이 없어져야 하고, 부상한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도와야 한다’라는 새로운 꿈을 품었다. 그래서 뜻 있는 친구들과 함께 부상자를 돕던 일이 적십자사 창설로 이어졌다. 오늘날 그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불린다.
요즘 코로나19 감염전파로 교회와 목사가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소수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할 일은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게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바이다.
주님은 한 사람의 신앙의 절정을 섬김에서 찾으신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이 우리를 섬김의 도구로 사용하시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지위는 이웃을 섬기는 자가 얻었다. 섬기는 자들은 죽은 후에도 길이 추앙받는 인물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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