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권 목사(한우리교회)

하나된 교회되어 통일된 하나님 나라 세워야 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3)

장일권 목사(한우리교회)
장일권 목사(한우리교회)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 많은 저술을 한 히브리대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인간의 마지막 진화는 신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이 되는 순간 역사는 종결된다”는 말을 합니다. 4차 산업혁명 후 머지않아 5차 산업혁명에서 비로소 인간이 신이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온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제는 보건(건강) 팬데믹을 넘어 경제적 팬데믹이 더 무섭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종교적 팬데믹이 더 큰 일이 아닐까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기피하므로 교회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살피면서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3중 거룩송’에 드러난 하나님의 우주적 비전

본문은 에베소서의 방향을 제시하는 서론(1:3~14)으로, ‘3중 거룩송’입니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핵심단어는 ‘때가 찬 경륜’(오이코노미아)입니다. 이 단어는 에베소서에서만 은혜의 경륜(3:2), 비밀의 경륜(3:9) 등 3회 사용됩니다.

경륜이란 창조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적인 의논하심이며, 그 의논으로 계획된 것을 작정(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본문에서 그 경륜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실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질 ‘때가 찬 경륜’이 무엇일까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우주적 비전, 곧 통일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통일되게(아나케파라이오오)’는 “사물을 한데 모으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모든 족속을 한데 불러 모아 통일된 나라를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역을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구속받은 자기의 백성을 기업으로 삼아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기업’이란 용어로 사용되는 교회

루터(M. Luther)는 로마서를 들고 종교개혁을 시작했고, 칼빈(John Calvin)은 에베소서로 종교개혁을 마무리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주의 몸 된 교회에 대해 계시된 심오한 ‘성경적 교회론’입니다. 이 교회를 에베소서 본문에서는 ‘기업’(클레로노미아)이란 개념으로 시작합니다.(11, 14절) 그리고 바울의 기도와 해설로 이어집니다.(기도 15~19절; 해설 20~23절) 바울의 기도 중에 핵심은 ‘기업의 영광’(18절)이며, 이 기도를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우주적 비전을 이룰 기업을 교회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1장의 서론과 기도에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를 기업이란 용어로 시작할까요? 그것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연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교회의 모형(typology)인 이스라엘과 연계해서 밝히시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 먼저 언약하시는 이유와 성격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본문에서 교회를 ‘기업’으로 사용한 것은 구약의 ‘소유’로 연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 모든 족속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기업)로 삼으시고 제사장 나라·거룩한 백성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신 것처럼, 교회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아 모든 족속을 구원하여 통일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 만물을 생명의 역사로 충만케 하신다고 말씀합니다.(23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교회가 큰 타격을 입고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 된 교회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창세 전에 경륜을 갖으셨기에, 주께서 교회를 반드시 지키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 교회를 지키기 위해 그 가운데서 운행하십니다.(계 1:20; 2:1) 바울도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 이 ‘은혜의 경륜’(3:2)을 에베소 교회에 전하며, “주께서 자신을 교회 세우는 일꾼으로 삼으셨다”(3:7)고 외칩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이 교회 복음의 비밀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우주적 비전을 위해 주께서 여러분의 교회를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또 주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여러분을 일꾼 삼으시어 목회하게 하신다는 소명의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특히 70~80%가 넘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절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폭풍우가 몰아쳐 거목들이 다 쓰러져도 그루터기, 뿌리를 지키면 언젠가는 반드시 나무가 새롭게 자라나 무성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한국교회의 명운이 달려 있습니다.

복음으로 하나된 교회의 정체성 회복

2장은 복음선포로 구원받은 자들이 한 몸 된 교회가 되었음(2:1~10)과, 교회의 정체성(2:11~23)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처음 단락(2:1~10)은 시대정신과 악한 영의 역사를 좇는 이방인(2:1~2), 그리고 욕심을 좇으며 이방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된 이스라엘(2:3)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하여 이 둘을 함께하는 교회로 세우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둘째 단락(2:11~22)에서는 에베소 교회를 이루고 있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한 사람, 한 몸이 되어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교회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당시의 사회·종교적인 큰 문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입니다. 이들은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입니다. 바울서신에서 이 문제가 시대적 배경으로 나타나고 있고,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최종상 선교사가 발표한 <이방인의 사도가 쓴 로마서>는 세계 신약학계의 거장들이 극찬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교회의 구성원들, 곧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과 처방을 밝히는 내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1장에서부터 이 관계를 언급합니다. 서론(3중 거룩송)에서 “우리-너희”를 언급하며, 2장의 첫 단란에서 “너희-우리”의 관계를 ‘함께 살리셨고-함께 일으키사-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5~6)라고 말씀합니다. 3장부터는 “우리-너희”의 관계에서 이방인의 사도가 이방인으로 구성된 에베소 교우들에게 참된 교회를 세우라고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다시 본문을 살펴보면, 전에는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유대인)과 멀리 있었던(분리된) 이방인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져있다고 합니다.(11~12절)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께서 이 둘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창조하다’, ‘걸작품’(2:10)이라는 두 가지 처방을 하셨습니다.

첫째,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막고 있는 성전 뜰의 담을 헐어버렸고, 둘째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14~15절)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에게는 성전과 율법은 생명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그것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가르침이며, 교회됨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하나님의 권속’, 혹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곧 ‘성전’이라고 합니다.(19~22절) 도저히 함께 양립할 수 없는 ‘유대인-이방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 유대인들이 생명으로 여기는 기득권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세인들은 교회를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치·이념적으로 보수의 핵심 가치는 ‘자유’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주장합니다. 진보의 핵심 가치는 ‘평등’입니다. 그들은 불평등한 사회를 개혁하여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분배 개념으로써 정의를 부르짖으며 통제경제체제를 선호합니다. 사실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함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유와 평등, 이 둘을 갈라놓으면 어떤 사회가 될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서로 나뉘어 끝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이방인’을 한 몸으로 세운 것이 교회입니다. 목회자들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데 역할을 감당하기는커녕, 정치이데올로기에 빠져 복음의 정신, 한 몸 된 교회의 정체성과 다르게 행동해서 될까요? 깊은 자성과 회개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통일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영원히 하나될 수 없을 것 같은 ‘유대인-이방인’을 한 몸 된 교회로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하나된 교회가 되어(4:1~6), 가정과 사회를 하나로 통일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5:21~6:9) 이 일을 위해 헌신할 때 우리 교회는 다시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목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통일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한 몸 된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이며, 교회만이 유일한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