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기획/정책이 이끄는 총회로 가는 길 ②정책 총회 가로막는 장애물들]
오직 ‘총회결의’로만 실행, 순발력 있는 정책 활동 힘들어
전문가보다 총대 중심·빈약한 콘텐츠, 과감한 변화 ‘발목’

제105회 총회를 앞두고 진행하고 있는 ‘총회기획-정책이 이끄는 총회로 가는 길’은, 구호로만 맴돌고 있는 정책총회를 불가역적으로 실현하는 원년이 돼야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다.
지난 호에서 정책총회를 위해 시도했던 교단의 노력과 더불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무산됐던 발자취를 살폈다. 엄밀하게 말하면 교단은 그동안 정책이 있는 총회가 되려는 시도만큼은 부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정책총회의 역사를 직면하면서,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책이란 통상 앞으로 추구할 노선과 방향이라는 의미로 긍정의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도 교단은 정책에 대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실제 적용하는 부분에서는 왜 그토록 인색했을까. 지금까지의 정책총회 시도와 좌절 과정을 분석해보면, 정책총회를 무산시키는 장애물을 세 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다. 비록 세 가지로 정리하지만, 정책총회를 가로막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세 장애물을 양산하는 교단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시스템 부재-정책 담아낼 그릇이 없다

104회 총회는 미래정책전략개발위원회(미전위)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미전위는 교단의 정책 방향과 전략을 세우기 위한 세미나를 여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치다가 최근에는 개점휴업 상태다. 올해 2월 발생한 코로나19 여파가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미전위가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논의를 하더라도 모든 것이 차기 총회에 청원 또는 헌의안을 상정해 통과돼야 비로소 실행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던 것이다.

이처럼 총회 구조상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한다고 한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총회 허락’ 밖에 없다. 설령 총회 결의를 얻었더라도 오직 결의 내용에 한정해서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총회결의 이후 활동을 하면서 그에 파생된 좋은 사업을 하고 싶어도 배정된 예산과 별도로 자체적으로 재정을 조달해 실시하거나, 차기 총회에 다시 상정해 예산을 배정받아야 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헌의안에 의해서만 의결될 수 있는 지금의 총회 시스템이 정책총회를 가로막는 1차적인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심각하게 고민할 부분이 있다. 정책 관련 부서가 심도 있게 연구개발한 정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개발한 정책을 수용해 실행할 부서를 상대로 정책을 전달할 수도 없고, 관련 부서 역시 자체적으로 정책을 받아서 검토하고 적용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다시 말해 교단의 21개 상비부와 특별(상설)위원회는 오직 총회로부터 수임한 사업, 그리고 기존 예산에 편성된 범주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경직된 구조로 교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풍요 속 빈곤 인재-총대로만 정책개발 기대 어렵다

교단은 교회 수나 성도 수에 있어 명실공히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가용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단은 정작 1500여 총대, 그중에도 상비부 임원과 특별위원회에 배정받은 특별위원 등 극히 일부가 1년 동안 교단 살림을 주도한다.

현실적으로 총회총대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기보다 정치적 측면이 강하다. 총대라고해서 모든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과 실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총회의 모든 활동은 오직 총회총대여야만 하는 구조다. 어떤 부서나 특별위원회에 들어가서 활동하려면 오로지 총회총대라야 자격이 주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책총회가 무산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총회총대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도 정책연구 관련 부서에 배정되면 적어도 1년 이상은 정책 연구개발 활동을 하게 된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정책 관련 부서가 회의체로 변질되거나, 정책 콘텐츠가 빈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3년간 총회정책연구위원회에 몸담았던 장봉생 목사도 이 부분에 대해 지적했다. 장 목사는 “총대라고 모든 분야에 탁월함을 갖는 것이 아닌데, 교단의 실상은 총대가 아니면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며 “총대로 구성된 정책 관련 위원회는 정책연구가 원활하도록 행정적으로·정치적으로 뒷받침을 하고, 전문위원제도를 도입해 총대가 아니더라도 분야별 전문가들이 교단과 한국교회를 위해 마음껏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도록 해야 정책연구 기능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어찌보면 정책총회 실현에 있어 시스템과 재정보다 더 시급한 것이 바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인재의 바른 활용은 교단 구성원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실시해 인재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교단이 필요로 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마음껏 기용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총회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정책총회를 위한 교단 차원의 시도가 이어졌지만 매번 좌초되는 배경에는 정책을 담아낼 시스템이 없고, 전문가 활용 통로가 제한적이며, 정치에 함몰된 총회문화라는 장애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정책총회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교단의 체제 변화와 인재 등용과 같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사진은 제100회 총회에서 총회정책연구소 관련 보고 장면.
정책총회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정책총회를 위한 교단 차원의 시도가 이어졌지만 매번 좌초되는 배경에는 정책을 담아낼 시스템이 없고, 전문가 활용 통로가 제한적이며, 정치에 함몰된 총회문화라는 장애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정책총회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교단의 체제 변화와 인재 등용과 같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사진은 제100회 총회에서 총회정책연구소 관련 보고 장면.

빈약한 콘텐츠-공감 약한 정책에 등 돌린다

아무리 시급한 정책이라도 구성원들부터 공감대를 얻지 못하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제공하게 되면 여지없이 폐기처분되는 것은 상식이다. 1995년부터 시작된 정책이 있는 교단을 향한 몸부림이 손에 잡히는 결실을 얻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배경에는, 일면 콘텐츠의 부재 내지는 내용의 빈약함이 작용했을 개연성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총회정책연구소다. 99회 총회에서 독립기관으로 출범했던 총회정책연구소는 불과 1년 만에 상설위원회인 총회정책연구위원회로 지위와 권한이 강등됐다. 여기에는 극도로 민감한 정치 개혁을 꾀하는 정책안을 내놓은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독립 정책연구기관이 자리도 잡기 전에 민감한 정치 부분을 건드렸다고 가차없이 지위를 강등시킨 대목은 아쉬움이 크다.

사실 정치와 정책은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시 정책연구소가 정책총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 구조를 바꿔야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과감하게 정치개혁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정책연구소에서 정책연구위원회로 강등된 이후에도 해당 위원회는 교단 구성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 등의 방법으로 교단이 변화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일정부분 정치문화 변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99회기 당시 정책연구소가 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 교회 또는 구성원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 작품을 내놓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총회가 정책연구소라는 독립기관을 출범시킨 이유도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치개혁 모색과 더불어 현장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제시했다면 지속가능한 정책연구 기관으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정치총회 넘어야 정책총회 가능하다

정책을 받아들이는 구조가 아닌 총회 시스템, 총회총대로만 인재풀을 가동하면서 전문성이 결여되는 현실, 이로 인해 불거지는 빈약한 정책 콘텐츠가 정책총회로 가는 큰 걸림돌임을 살폈다.

정책이 이끄는 총회를 가로막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극도로 정치지향적인 총회문화다. 정책총회를 불가하게 만드는 장애물 역시 정치일변도의 총회문화에서 파생하기 때문이다.

정책보다는 정치에 온통 관심을 집중하다보니, 그동안 총회 현장은 정쟁의 장이 되기 십상이었다. 상대적으로 장기적으로 교회를 살리고 교단발전을 꾀하는 중차대한 정책 분야의 안건들은 논외로 치부되어 왔다. 사람을 뽑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 사생결단으로 대립하는 모습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면 교단과 교회를 살리는 정책 분야의 안건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도 없이 그저 “해당 위원회로 보내기로” 해놓고도, 관련 재정 지원에는 인색한 결정해 온 것이 교단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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