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은 목사의 독서대학]

독서는 크게 3단계로 나눈다. 교양독서, 학습독서, 그리고 연구독서다. 생애 주기별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나이를 먹고 독서력이 세워져 가는 정도에 따라 비율을 달리해 가며 진행된다.

1단계, 교양독서다. 말 그대로 교양을 세우는 독서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독서요, 삶의 기초를 다지는 독서다. 성숙을 지향하는 미성숙한 상태의 독서인 동시에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 독서다. 어느 특정 기간의 독서 방법이 아닌 지속성을 생명으로 한 평생과정 독서다.

교양독서의 출발은 관심이다. 의문을 풀어가고 빈 여백을 채워가는 것이 교양독서의 즐거움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때로는 계획적으로 관심은 이동된다. 나의 관심에서 너의 관심, 우리의 관심으로 확장되는 교양독서는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지혜의 마중물이다.

크리스천에게 교양이 삶의 목적은 아니지만, 하나의 중요한 목표임에 분명하다. 사진은 필자가 운영하는 ‘장대은 독서대학’ 수강생들과 함께 한 모습.
크리스천에게 교양이 삶의 목적은 아니지만, 하나의 중요한 목표임에 분명하다. 사진은 필자가 운영하는 ‘장대은 독서대학’ 수강생들과 함께 한 모습.

자녀의 독서교육에 있어 부모의 실수는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즐거움의 추구와 성장을 추구하는 독서의 대립이라고나 할까! 독서에 있어서 아이들은 즐거움을 먼저 추구한다. 부모는 좋음, 탁월함, 훌륭함을 추구한다. 아이들의 원함, 부모의 원함 그 어느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주어진 자리에서의 자연스러움이다.

다만 중요함을 이루기 위해 질서를 따라야 한다. 자녀들의 훌륭한 독서습관과 태도는 성장 목표여야 한다. 출발지점에서의 강요여서는 안 된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교양독서의 출발은 자녀의 관심에 양보해야 한다. 진중함도 좋지만 가벼움도 허하라. 교육은 신중해야 하나 조급함은 피해야 한다. 강요에 의한 의무가 아닌 권리의 누림이 되는 즐거운 교양독서를 선물해줘야 한다.

목회자의 교양독서는 더욱 중요하다. 원함을 넘어 의무에 가깝다. 목회의 대상인 성도들은 다양한 세상 속, 각기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목회자가 교양독서를 통해 다양한 주제에 대한 앎을 추구하는 것은 사명의 일부다.

사고력은 약화되고 정보력이 강화된 시대, ‘목사의 교양’은 더욱 중요하다. 목회사역의 침체가 진리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어진 부자유함 때문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리에 대한 몰이해일수도 있지만, 교양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기도의 부족일 수도 있지만, 상식적인 앎과 실천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성도는 지식이 없어도 구원을 선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은혜다. 구원에 있어 목사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역할과 사명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은혜와 권리 너머 감당해야 할 의무, 책임이 뒤따른다. 모든 지식인, 독서가가 모두 영성의 사람은 아니지만 모든 영성의 사람은 탁월한 지식인이요, 교양인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수준 높은 교양인 말이다.

목사의 교양독서는 일상이어야 한다. 즐거움 너머 거룩함의 추구여야 한다. 사명 감당을 위해 힘쓰는 모든 목회자들의 교양독서, 하나님의 큰일을 위한 오늘의 작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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