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번역과 신학 해설 및 신앙 적용] (24)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특별기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번역과 신학 해설 및 신앙 적용] (24)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 기독신문
  • 승인 2020.08.04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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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 자체가 참 예배이다

1. 참 지식에 따른 참 예배  

본성의 빛은 모든 것 위에 통치권과 주권을 지니신 하나님이 계심과 그가 선하시며 모든 것에 대하여 선을 행하시므로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며 힘을 다한 경외를 받으시고, 사랑을 받으시며, 찬양을 받으시며, 기도를 받으시며, 신뢰를 받으시며, 섬김을 받으셔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으로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은 그 자신에 의해서 수립되고 그 자신의 계시된 뜻에 의해서 제한되므로, 그는 사람들의 상상과 고안이나 사탄의 제안에 따라 어떤 가시적인 표상 아래서 예배를 받으시거나 성경에 규정되지 않은 어떤 다른 방식 아래서 예배를 받으실 수 없다. 종교적 예배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오직 그에게만, 드려야 하고, 천사들이나 성도들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에게 드려서는 안 되며, 타락 이후 중보자가 없이 드려서는 안 되며, 어떤 다른 중보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중보 가운데 드려야 한다.(21.1~2)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경건은 하나님의 계시를 내려 받고 예배를 올려 드림에 있다.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notitia vera, true knowledge)이 없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참 예배(cultus verus, true worship)가 있을 수 없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낫다(전 5:1). 참 지식이 선행(先行)해야 참 예배가 후속(後續)한다. 참 지식이 없으면 제사도 폐해지고 제사장도 폐해진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호 4:6).

제사장은 세상의 이치를 전하거나 세상의 일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신령한 지식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 한다(말 2:7). 제사 직분이 변역하면 율법도 반드시 변역한다(히 7:12).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심으로써 사람이 자기를 인격적으로 알고 자기에게 인격적인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셨다(창 1:26~27). 그리하여 모든 사람의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보이게 하셨고(롬 1:19), 만물에 자기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롬 1:20).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가 하신 일을 나타내며, 그의 지식을 전하며, 그의 소리를 울리며, 그의 말씀을 세상 끝까지 이르게 하며,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 아무도 없게 한다(시 19:1~6).

그러나 타락한 인류는 자기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롬 1:28),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꾸었으며(롬 1:21, 23),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다(롬 1:25).

하나님의 계명에 따르지 않는 것은 모두 우상 숭배이다. 말씀에 따라,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만 섬겨야 한다(마 4:10, 신 6:13). ‘사람의 계명’에 따른 예배는 헛되고(마 15:9; 사 29:13),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에 따른 예배는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고 만다(골 2;22). 이러한 예배는 ‘자의적 숭배’에 불과한 것으로서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기는커녕 오히려 육체에 얽매어 괴롭게 한다(골 2;23).

이전에 사마리아 여자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였다(요 4:22). 그러나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만난 후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되었다(요 4:22~24).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므로,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요 14:6). 그가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므로(딤전 2: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게 된다(엡 2:18).

예배는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드려지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드려진다. 성부도 영이시고, 성자도 영이시며, 성령도 영이시다. 하나님은 영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받으시며, 영으로서 예배를 받으신다(요 4:24). 성자는 예배를 중보하시며, 예배를 받으신다. 성령은 예배를 역사하시며, 예배를 받으신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고 아버지를 공경할 수 없는 바, 성령을 공경하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을 공경할 수 없다(요 5:23). 그러므로 성부와 다름없이 성자께, 성자와 다름없이 성령께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으로서(롬 9:5, 계 5:13)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림이 합당하다(계 5:12, 7:12).

2. 예배의 일부를 이루는 기도

감사함이 함께 하는 기도는 종교적 예배의 특별한 부분이니 하나님에 의해서 모든 사람에게 요구된다. 기도가 받아들여지려면 성자의 이름 가운데, 하나님의 영의 도움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해, 경배, 겸손, 열정, 믿음, 사랑, 견인과 더불어, 만약 소리를 내서 한다면, 알려진 언어로 드려져야 한다. 기도는 합법적인 사안들에 대하여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사람들이나 이후 살아갈 사람들을 위하여 드려져야 하며 죽은 자들이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것으로 알려질 수 있는 자들을 위하여 드려져서는 안 된다.”(21.3~4)

기도와 간구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하되, 성령 안에서 해야 한다(엡 6:18).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는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고 기도 없이 살 수 없다(롬 8:15, 갈 4:6).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주시고, 우리가 그 아들과 함께 자기 자녀가 되게 하셨다(롬 8:17, 32). 그리하여 오직 감사함 가운데, 아무 공로 없이, 아무 염려 없이 자녀로서의 기도를 드리게 하셨다(빌 4:6).

우리가 그 아들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그 아들이 친히 이루신다. 그리하여 그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요 14:12~13). 기도가 송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그 아들의 의를 전가받아 구원을 얻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리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들으시고 그 구한 것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어야 한다. 그리하면 그대로 된다. 성도의 담대함이 여기에 있다(막 11:24, 요일 5:14).

우리는 ‘계속해서’ ‘항상’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공로가 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함에 충분하니,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낙심하지 말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한다(약 1:6, 눅 18:1, 딤전 2:8).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 8:26). 기도는 산 자의 일이며, 산 자를 위해서만 드려야 한다(삼하 12:21~23; 눅 16:25~26). 기도는 의를 구하는 것이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 일에 대해서는 드려서는 안 된다(요일 5:16).

3. 자신을 드리는 삶의 예배

경건한 경외로 성경을 봉독하는 것, 견실한 설교, 이해와 믿음과 경배로 하나님께 순종함에 있어서 말씀을 양심적으로 듣는 것, 은혜로 마음속에 시편을 노래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성례들의 적정한 거행과 가치 있는 받음이 하나님께 드리는 통상적인 종교적 예배의 모든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적 맹세, 서원, 엄숙한 금식, 여러 경우에 있어서의 감사함, 이것들은 그 여러 때와 시기에 거룩하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21.5)

예배는 성경 봉독, 설교의 선포와 믿음의 들음, 찬송으로 이루어지며, 성례의 거행도 그 가운데 포함된다. 성도의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데 있다(계 1:3). 그 정점에 예배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거룩한 씨’를 ‘그루터기’로 남겨 주셔서, 우리가 성전의 스랍들처럼, 예배 가운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화답하게 하신다(사 6:3, 13).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 속에는 성령이 계신다(고전 3:16, 고후 6:16).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친다(고후 4:6).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서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붙잡는다(히 3:6). 우리는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니, 우리는 ‘사람의 영광’을 구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요 12:43).

참 예배는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자기 자신을 드려 그를 섬기는 것으로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그 요체가 있다(신 6:3).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 자체가 예배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아멘.


※ 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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