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필자는 동이 터 오르는 아름다운 아침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새로운 은혜를 기대한다. 그 기대를 품고 기도하며, 창세기 1장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특히 1장 3~5절 말씀을 좋아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영어성경에서는 ‘light’로 번역하는 이 빛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록되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빛은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불가결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빛에서 나오는 에너지나 온기로 말미암아 우주가 움직이고, 식물이나 동물이 생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빛을 어둠(흑암)과 구분하여 낮과 밤이라고 칭하심으로, 우주의 역사가 시작하는 첫날이 되었다.

태양은 아침을 알리는 힘찬 일출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몰의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그처럼 빛은 어둠 속에 사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며, 삶을 아름답게 한다. 때로는 숨겨진 죄악을 드러내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노을을 보면서 하루(인생)의 끝을 생각하고 슬퍼하지만, 시각을 바꿔보면 황혼이야말로 아침을 향한 부활의 소망을 갖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황혼에는 하늘에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운 물감이 뿌려진다.

작가 박완서는 산문집 <두부>(2001년)에서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혀진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인간사의 덧없음과,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아아, 그러나 너무도 지엄한 분부, 그리하여 알아듣고 싶어 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끝을 맺는다.

세상을 살면서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과 인생관이 달라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령 충만한 삶,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첫날의 빛이 되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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