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한 나라의 인사를 보면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의 인사는 ‘샬롬’이다. 우리말 ‘평화’로 번역할 수 있지만, 실은 더 넓고 깊은 의미가 있다. 육신과 정신과 영혼, 그리고 환경과 조건 모두가 온전한 상태를 가리켜 ‘샬롬’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들에게 생존을 위협받으며 살아온 유대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인사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의 인사는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였다. ‘은혜’(카리스)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주어지는 값없는 선물을 가리킨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신에게서 온다고 믿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이 운명이나 운으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어느 쪽을 믿든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생이 모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뭔가 내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는데 그 ‘덤’이 바로 ‘은혜’이다.
많은 사람이 은혜 받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또는 어떻게 그걸 얻을 수 있는지 모른다. 은혜는 ‘받는 것’으로서, 그것을 주는 존재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받는 사람은 주는 대로 받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기다리는 사람은 때로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그것이 올 때까지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말한다. 17절에서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고, 16절에서는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라고 한다.
은혜를 받지 않고는 인생을 복되게 살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어디선가 은혜가 떨어지기를 바라며 하늘만 쳐다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은혜가 있되, ‘충만히’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더욱 든든히 뿌리를 내려야 한다.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동행하며, 그분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분 안에는 은혜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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