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리는 아프다 그리고 주님도 아프다
[시론] 우리는 아프다 그리고 주님도 아프다
곽은진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기윤실상담센터 공동소장)
  • 기독신문
  • 승인 2020.06.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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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은진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기윤실상담센터 공동소장)
곽은진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기윤실상담센터 공동소장)

“두 분이 싸우면 온 동네가 시끄러웠어요. 그럼 무조건 집에서 뛰어 나왔어요. 무서워서”
“엄마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였어요. 제가 죽겠다고 칼을 들이대니 그때서야 아버지 폭력이 멈췄어요.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어요. 저는 어리고 그들은 어른인데… 저 역시 어려서부터 맞고 자랐어요.”

“아버지가 술 드시고 오시면 창고에 숨었어요. 보이면 바로 맞았으니까… 숨도 못 쉬고..”

상담을 하다보면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잘못된 양육환경이나 폭력적 가족 관계에 노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이들이 상담을 의뢰한 이유는 어린시절의 폭력 경험을 치유받기 위함이 아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이야기에는 폭력 가운데 놓였던 자신의 과거의 어린아이가 등장하고 지금도 남겨진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고통의 경험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부정적 감정으로 남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조종하고 통제하고 있는 상처를 만난다. 현재 겪고 있는 관계갈등이나 사회 부적응으로, 무가치감의 정체성 혼란, 그리고 불안, 두려움, 우울, 분노의 정서적 불편감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어린 시절의 학대경험은 과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아동학대는 그 잔혹성과 높은 증가율로 인해 심각성을 인지하지만 사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아동학대는 신체적 폭력 외에 정서적, 언어적 학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가장 빈번하고 심각한 것은 돌봄의 부재, 방임, 또는 유기의 정서적 학대이다. 학대는 가정의 경제 상태나 부모의 학력과도 무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동학대 경험은 주 양육자인 부모로부터 주로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 피해자가 학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가해자에게 의존되어 성장하기에 더 심각하다.

나는 기독 상담자로서 아동학대가 기독교 가정이나 기독교인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종종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서도 내가 염려하는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방임이나 돌봄의 부재, 심리적 유기 등의 정서적 학대이다. 신체 폭력은 드러나고 범죄로 인식되어 있지만 폭력적 사랑의 매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처럼 경계가 모호한 학대의 범주와 방법들 그리고 왜곡된 인식들은 아동학대를 방치하여 문제를 더 확산시키고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교회는 이미 익숙하여 문제의식조차 갖기 힘든 기독교인들이나 기독교 가정에게 폭력적이거나 학대적 요소에 관한 의식 전환의 교육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채 누구나 가해자 부모의 위치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물질주의와 관계의 소외가 낳은 인간 존엄과 가치 상실이라는 사랑의 결핍 결과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이성이 아닌 진심어린 소통의 감정에서 나온다. 주님은 마음의 중심을 강조하며 공감과 긍휼, 배려와 수용 등 정서적으로 관계를 맺으셨다. 그분은 행위나 당위의 판단자나 통제자가 아닌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이제 나와 우리의 문제라는 의식을 갖고 우리는 가해자 부모 역시 누군가의 피해자일수 있다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심어린 소통은 늘 나 자신에서 시작되어 공동체를 향해 있다. 학대 앞에 우리는 모두 힘들고 아프다, 주님도 아프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아픔을 공감할 때 진정한 회복을 이들과 함께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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