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나 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자리는 없어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가 귀한 사람일까? 두 말할 필요 없이 자리보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병들게 하는 사람은 자리만 탐내는 사람일 것이다. 자리를 통해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그 자리에 걸맞은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리와 일, 무엇이 중요한가를 논할 필요는 없다. 일을 위해 자리가 필요하고 자리를 통해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 잘하는 사람이 합당한 자리에서 세상을 이끈다면 일과 자리의 적절한 균형을 이룬 것이니 환영할 만하다. 또한 일을 원한다면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그 일을 좋아하고 또 잘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미뤘던 공무원시험을 치렀다. 20여만 명이 응시했다. 적절한 사람이 그 곳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할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이나 취향보다 그 자리가 가진 안정성만을 추구하고 성적만으로 자리를 차지한다면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교단이나 교회도 많은 자리가 있다. 공적 선거나 공모 또는 임명 등을 통해 자리에 앉는다. 적절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창의적으로 일을 한다면 교회도 부흥하고 교단도 건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욕망만으로 자리 욕심을 내고 온갖 방법으로 자리를 차지한다면 암담한 일이다. 또한 특정인들이 집단을 이뤄 곳곳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자리에 앉는다면 섬김보다 이익 추구에 힘을 쏟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다면 훨씬 좋고 또 많은 일을 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모두에게 큰 손해라 할 수 있다. 어떤 자리든 내가 앉아 일하면 모든 이가 그 자리의 가치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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