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대구의 진골목은 신분의 차별, 근대의 도래 등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대구의 진골목은 신분의 차별, 근대의 도래 등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진골목’은 말 그대로 좁은 골목이다. 진골목에 들어서면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칠 것만 같다. 넓은 대로(大路)들이 도시를 거미줄처럼 뒤덮고 있는 나라에서, 그리고 그 길을 자동차로 씽씽 달리는 것에 익숙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좁은 골목이 생소하기도 할만하다. 하지만 골목은 원래 이런 곳임을 알려주는 곳이 바로 진골목이다.

진골목의 원래 뜻은 ‘긴 골목’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길다’를 종종 ‘질~다’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진골목은 그리 길지 않다. 한 100~200미터 남짓 될 뿐이다. 그런데 이 골목이 왜 진골목이 되었을까? 거기에는 조선의 신분제와 얽힌 사연이 한몫을 했다.

진골목과 나란히 난 길이 종로인데, 종로는 말을 탄 양반들이 많이 다니던 길이었다. 조선의 하층민들은 그 양반들과 부딪히기 싫어서, 또한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양반들에게 고개를 숙이기 싫어서 종로의 뒷골목 격인 진골목을 이용했다. 진골목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애용하던 우회로였던 것이다. 좁은 길을 돌아갔기에 더 길고 멀었고, 신분의 차별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걸어서 더 길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진골목은 1905년에 만들어진 대구 읍성의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던 길이다. 무려 100년도 넘게 대구 서민들의 길로 이용되면서, 긴 역사만큼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진골목은 세월의 부침을 보여주는 골목이다. 진골목을 걸으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큰 간판과 간판 옆의 오래된 2층 양옥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1937년에 세워진 대구 최초의 서양식 주택이자, 2층 양옥식 건물인 정소아과 건물이다.

6·25전쟁 전후 대구 사람들의 삶을 다룬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1988)에도 등장할 만큼 정소아과 건물은 한 때 대구의 랜드마크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정소아과 건물은 이제 대구 근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남았다. 가장 현대적이었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더 사랑하고 자주 찾는다. 진골목을 걸으며 이 땅에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새삼 느낀다. 또한 무조건 새로운 것만 좋은 게 아니라, 때로는 옛 것이 더 많은 영감을 준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진골목은 사람들이 다시 찾고 있는 골목이다. 진골목에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는데 바로 ‘미도다방’이다. 세상에 카페도 커피숍도 아닌 다방이라니, 이름에서부터 옛 정취가 느껴지지 않는가? 1982년에 개업한 미도다방은 여전히 옛날 모습을 지닌 채 성업 중이다. 대표 메뉴는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이다. 장년 이상의 사람들은 그리움으로, 젊은이들은 호기심으로 방문해 옛날 다방에서 쌍화차를 마시곤 한다.

이제 진골목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진골목을 천천히 걸으면서, 나만의 추억을 만들어 보자. 진골목의 100년 스토리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덧입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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