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찬 목사(대구 동산교회)

박영찬 목사 (대구 동산교회)
박영찬 목사 (대구 동산교회)

벌써 56년 전의 일입니다. 그녀는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홈런을 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알토란 같은 적시타를 치면서 남부럽지 않은 인정과 사랑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야구의 꽃인 홈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 밖으로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은퇴할 때까지 홈런 세리머니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커져갔습니다. 왜냐하면 친정어머니의 통산 출산 성적 때문이었습니다. 1남 9녀. 원래 딸들 중의 한 명은 친정어머니를 닮는다는 동네 아낙들의 농담 섞인 수다가 저주처럼 들렸습니다.

결혼 후 설마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딸만 내리 세 명을 낳았습니다. 남편이나 시댁식구들 앞에서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시골장날 아들 둘을 데리고 음식을 동냥하러 온 거지가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아들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은 그녀가 찾아간 곳은 경산시 와촌면에 있는 무학산이었습니다. 뽀얀 먼지로 도색된 완행버스의 덜컹거림이 멈추자 가파르게 이륙하는 거친 산길의 아득함이 시작되었습니다. 쌀이랑 반찬 그리고 냄비를 이고지고 오르던 고단함의 끝자락에 무학산기도원(원장 김순도장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집회장소도 없었지만 3000명의 성도들이 부르짖는 기도 소리는 작열하는 여름 태양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그 부르짖음 속에는 그녀의 서원기도가 들어있었습니다. “사무엘같은 아들을 주시면 한나처럼 주의 종으로 바치겠나이다.” 그녀는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듬해 겨울 그녀는 생애 첫 홈런을 쳤습니다. 이승엽 선수의 56호 홈런과 비교할 수 없는 홈런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서도 또 한 번의 멋진 홈런 아치를 그렸습니다. 그녀의 홈런 이야기는 바로 제 어머니의 기도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부터 장래희망이 목사였던 제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던 날, 사당동 캠퍼스에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하얀 눈이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동서울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던 날, 아내의 손같이 고운 벚꽃이 비처럼 내렸습니다. 35살의 나이에 대구 동산교회 담임목사로 위임받는 날, 라일락 향기가 윙윙거리며 진동하였습니다.

이처럼 내 인생에 아름다웠던 순간들마다 어머니는 언제나 함께하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아들의 목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는 그 어떤 홈런타자보다도 멋지고 당당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무학산 홈런타자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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