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주년 기획/70프로젝트, 또 같이 우리] ①70년, 꿈꾸던 자들이 돌아온다

요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황금사과’라는 동화의 한 대목이다.

어느 작은 도시 한가운데 예쁜 사과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 황금사과가 열린다는 소식이 퍼졌다. 나무를 사이에 둔 아랫동네와 윗동네 사이에는 황금사과를 서로 갖겠다며 툭하면 싸움이 벌어졌다. 두 동네 사람들은 땅바닥에 금을 긋고 사과를 나누어 갖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약속을 어기고 금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작은 문이 달린 나무 울타리를 세워보고, 그래도 안 되자 사방이 꽉 막힌 높고 단단한 담을 쌓으며 양쪽에 서로 보초까지 세웠다. 하지만 서로 의심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은 더 쌓여갔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무도 그 담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어. 언제 담을 세웠는지, 왜 세웠는지조차 사람들은 까맣게 잊고 만 거야. 담을 넘는 사람들이 없어지자 보초도 사라졌고, 황금사과까지 사라졌어. 오직 남은 것은 가슴 깊숙이 뿌리박힌 서로 미워하는 마음뿐이었지.”

70년, 익숙해진 분단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형제의 상’. 전쟁 발발 70년이 지나도록 겨레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 채, 불신과 혐오가 재생산되고 있다.

담이 쌓인 지 70년. 달로 치면 840개월, 날로 따지면 무려 2만5567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들의 가슴에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해보자. 6·25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에 관한 기억 자체일까. 아니면 두려움과 혐오와 적대감이란 감정들일까.

2020년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휴전선 한 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반대편의 여론과 사회상황을 들쑤시고, 북측의 심심찮은 미사일 도발에 남측이 사드 배치로 대응하는 식의 소동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남남 간의 갈등도 심각하다. 사상의 오른쪽으로 치우친 쪽에서는 무슨 구실이 생길 때마다 ‘종북’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어김없이 빼어들고, 왼쪽으로 치우친 쪽에서는 정당한 선거과정을 거쳐 당선된 탈북자 출신의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자신들을 오래도록 괴롭혀온 ‘빨갱이’ 딱지를 붙이며 비아냥거린다.

이런 판국에서 통일은 국민적 관심사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난다. 올 봄 대통령 직속 통일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실시한 ‘국민 통일여론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국민 열 명 중 세 명꼴이었고, 4명 중 한 명은 남북통일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을 협력이나 지원 대상이 아니라 경계·적대의 대상으로 본다는 응답률은 무려 36.1%로 나왔다. 향후 남북관계 전망에서도 ‘좋아질 것’(40.3%)이라는 응답보다 ‘변화가 없을 것’(47.7%)이라는 응답이 더 높았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해볼 때 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것이 이번 조사의 결론이다.

그 가운데 한국교회가 선 지점은 어디쯤인가. 한반도에 따뜻한 햇살 같은 존재라면 좋으련만, 되려 사상과 권력의 다툼을 재생산하고 더욱 심화시키는 불쏘시개 노릇에 그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 땅의 전쟁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상정치 아닌 성경을 따르라
최근 총회역사위원회의 의뢰로 ‘한국전쟁 이후의 기독교-상처와 치유의 미완성’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한 심창섭 총신대 명예교수는 6·25전쟁 이후 한국교회에 나타난 주요 현상 중 하나로 ‘반공주의 이념 지향’을 언급하며, 한국교회가 전쟁을 전후로 공산정권의 박해를 뼈아프게 경험하면서 반공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총회 임원들이 지난해 평양을 방문하고 북측 인사들과 환담하는 모습. 편견 없는 만남과 거리낌 없는 왕래가 우리에게 통일이라는 희년의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나아가 심 교수는 “오늘날까지 좌우파의 이데올로기 갈등은 치유되지 않고 있으며 한국사회와 정치발전에 암초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정황 가운데 교회는 좌우파의 정치이데올로기에 편승해서 교회 분열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하며 “교회는 세상정치의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말고 성경말씀과 복음 정신으로 교회의 설 자리를 매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성경말씀과 복음 정신은 오늘날 한국사회, 특히 교회가 취해야 할 분단과 갈등의 문제에 대한 자세를 어떻게 제시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용어가 쥬빌리, 즉 희년(禧年)과 안식년(安息年)이다.

레위기 25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희년제도는 50년마다 공포되며, 이때를 기해 사람들은 서로를 갈라놓던 신분차별과 묵은 빚 등의 불편한 관계들을 청산할 수 있었다. 인간사회 뿐 아니라 ‘땅’으로 상징되는 자연계까지도 해방과 안식의 기쁨을 맛보았다. 모든 피조세계가 다시 한 공동체로 통일되고 회복되는 과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7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안식년도 기본적으로는 땅을 쉬게 하는 제도였지만, 인간관계에서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고 화해하는 계기로서 역할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70년, 안식년이 벌써 10번째 돌아왔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평화’와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 희년을 선포하기 위한 노력은 항상 있었다.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과 캠페인은 멈춘 적이 없었고, 북녘 동포들의 굶주림과 재난 소식이 들려올 때도 가장 먼저 발벗고 도왔다.

그렇지만 희년의 기쁨은 제대로 이 땅에 임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하나님의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염원이 부족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성경은 희년과 안식일 제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들의 ‘태도’ 문제를 언급한다. 언약백성은 이 제도에 참여함에 있어서 의무감 뿐 아니라 자발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용과 배려라는 본질까지 마음 속에 채워야 했다.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신 15:9) 어쩌면 근본 원인을 여기에서 찾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평화와 통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
광주에서 사역하는 김효민 목사는 분단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고, 통일희년의 소망을 간절히 추구하는 인물이다. 본인이 섬기는 봉선중앙교회에서 정기적으로 통일을 위한 기도회와 통일포럼을 개최하고, 매년 6·25를 즈음해서는 통일선교주일을 지키는 등 목회사역 전반에 키워드로 삼는 한편 소속한 전남노회에 통일선교위원회를 조직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총회통일준비위원회가 개최한 평화통일기도회에서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한반도 전체에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우리의 소중한 꿈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통일기도회의 열기가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뜨겁게 이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겨레와 역사 그리고 복음을 품고 꾸준히 기도하는 동역자들이 존재해 이 사역이 외롭거나 힘들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김효민 목사를 고민스럽게 하는 문제는 다른데 있다.

“좌우 이념 갈등,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 등으로 인해 통일이라는 사안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기독교인들 안에도 존재하는 것은 대단히 마음 아픈 일입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서 실제가 되지 않는 한, 어쩌다 통일이 성사된다 해도 근본적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정치색을 떠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우리 겨레 안에 이루는 사명에 다 같이 마음을 모았으면 합니다.”

김 목사와 같은 개인과 교회 혹은 남북나눔운동,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평화통일연대 등의 단체 중심으로 통일을 꿈꾸며 일하는 기독인들의 행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미관계의 악화에서 비롯된 남북대화의 교착, 코로나19로 인한 제약 등의 악조건들로 활동이 주춤한 듯 보여도 희년을 바라보며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손길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앞부분에 소개한 동화에서는 아이들끼리 선입견 없는 대화와 거리낌 없는 왕래를 통해 두 마을 사이 냉전의 시대가 종식되기 시작한다. 우리의 현실세계에서는 높이 쌓은 담을 무너뜨리고,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이 나란히 서서 황금사과를 즐길 그날이 언제쯤 올까.

희년의 그날, 헤어진 이들이 돌아와 다시 만나는 그날을 꿈꾸며 본지는 6·25 발발 70주년 특별기획의 첫 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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