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아담스관 정면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잠언 1장 7절의 구절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 땅의 교육이 다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교육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담스관 정면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잠언 1장 7절의 구절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 땅의 교육이 다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교육이 되기를 소망한다.

필자에게는 세 명의 자녀들이 있다. 셋 다 중학교는 계성중학교를, 고등학교는 남산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 두 학교는 대구선교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계성중학교는 1906년 계성학교라는 이름으로 대구선교의 아버지 아담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고, 남산고등학교는 1907년 부루언 선교사의 아내 부마태 선교사에 의해 신명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이 학교들이 세워지기 전 1900년 아담스 선교사가 세운 대구 사립초등학교의 효시인 ‘야소교 대남소학교’도 있고, 1902년 부마태 선교사가 세운 ‘신명여자소학교’도 있다. 하지만 고등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학교는 계성학교와 신명학교이다. 이 두 학교는 110년이 넘게 대구지역에서 복음과 교육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구경북 선교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바로 “교회 있는 곳에 학교 있다”이다. 1900년 대남소학교가 세워진 후, 대구경북지역 교회에는 수많은 사숙(私塾)과 초등학교들이 생겨났다. 1920년에 이르면 그 수가 70여 개에 이르렀다고 보고된다. 일제의 박해와 압제 때문에 이 학교들이 다 유지되지는 못했지만 대구경북의 교회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다음세대를 길러내는 일에도 정말로 열심을 내었던 것이다.

대구에 오시면 서문시장과 인접한 계성중학교에 들러 아름답고 건물들을 감상해 보시라. 계성중학교에는 1900년대 초에 지어진 핸더슨관 아담스관 맥퍼슨관 등의 건물들이 있다. 그중 1908년 건립된 아담스관은 영남최초의 양옥 교사이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5호로 등록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서,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아담스관 정면에 기록되어 있는 ‘寅畏上帝智之本(인외상제지지본)’이라는 글귀이다. 잠언 1장 7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는 뜻을 가진 이 한자 글귀는 계성학교가 115년 동안 지켜온 교훈이자, 존재가치이다.

아담스관은 3·1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건물이기도 하다. 대구의 3·1운동은 1919년 3월 8일에 벌어졌는데, 계성학교의 교사들과 계성학교 전교생 46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가 등사되기도 했다. 대구 3·1운동으로 일제에 의해 형벌을 받은 사람은 모두 76명이었는데, 그 중 44명이 계성학교 전·현직 교사와 재학생들이었다. 때문에 계성학교는 만세운동 후 1년이 지난 1920년 4월이 되어서야 다시 개교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에 세워진 대구의 교회와 학교들은 한 몸과 같았고, 지역사회의 소금과 빛이었다. 그 아름다운 전통을 21세기 대구교회들이 이어받기를 소망한다. ‘대구교회 있는 곳에 대구의 학교가 있다’는 말이 다시 들려왔으면 좋겠다. 이 땅의 학교교육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교육이 되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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