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우리 교단은 칼빈주의 보수신학과 개혁신학를 지키고 계승해온 견고한 보수교단이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제도적 보수, 형식적 보수, 문화적 보수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설교도 예배도 시대 흐름과 변화를 간과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개혁신학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절대은혜를 강조하고 끊임없이 성경을 향하여 가고 성경으로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제도로 너무 굳어 있다. 제도가 화석화 되어가고 설교도 바르게만 하려고 하지 청중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꿈틀거리게 하는 힘이 부족하다. 왜 그런가. 문화적 보수에 갇혀서 그런 것이다. 과거에 한동안 교회에서 드럼도 못치고 기타도 못 치게 한 적이 있다. 이런 모습 역시 신학적 보수가 아니라 문화적 보수에 갇혀서 사회흐름을 보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이후에는 뻔한 설교, 뻔한 예배를 드리면 안 된다. 이미 코로나19라는 사회, 문화적 충격으로 인해 현장예배가 낯설어지고 대면관계를 기피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냥 정보, 지식, 교리 전달의 설교가 아니라, 설교자의 심장에 하나님의 마음과 아픔을 이식하여 성령 언어의 임재사건을 일으키는 설교를 해야 한다. 그럴 때 코로나로 인해 지쳐 있는 성도들이 은혜와 감동의 클라이막스를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오게 하는 폭발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개혁신학의 본질은 삶에서 실천되는 것이다. 특별히 설교와 예배가 그렇다. 청교도가 왜 무너졌는가. 문화적 도전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전통과 제도만 고집하다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도태된 것이 아닌가. 언약도도 시대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기득권 싸움을 하다가 영향력을 상실한 것이다.

칼빈도 양면성을 보였다. 교회에서 피아노도 못 치게 했던 완고한 보수주의자였지만 시편 찬송을 할 때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당시 프랑스의 민요에 가사를 붙여서 불렀다. 이를 쥬네브 시편 찬송이라고 한다. 낙스 같은 경우는 아예 강단에서 내려와서 연기를 하며 연출하는 설교를 했다. 보수는 신학적 보수, 성경적 보수가 되어야 하고, 문화적으로는 때때로 변종이 되기도 해야 한다.

생태계에서도 끊임없이 변종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도 신학적 순수성과 정통성을 지키되, 코로나19 이후에도 뻔한 교단으로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시대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복음을 더 확산시키기 위하여 거룩한 변종이 되어야 한다.

진리와 가치는 지키되, 변화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 코로나19 이후에 우리 교단도 문화적 보수를 넘어 창조적 교단을 이루자. 그럴 때 총회 100년의 미래를 설계하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교단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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