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

1.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로서 구원의 사역을 맡으심

하나님은 자기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그의 독생자 주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그리고 자기 교회의 머리와 구세주, 모든 것의 상속자, 세상의 심판관으로 택하시고 임명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에게 영원부터 한 백성을 주셔서 자기의 씨(후손)가 되게 하셨고, 그들이 정한 때에 그에 의해서 구속 받고, 부름 받으며, 의롭게 되며, 거룩하게 되며, 영화롭게 되게 하셨다.”(8.1)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속하기 위하여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이는 창세 전에 아들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작정하신 아버지의 영원하고 비밀스런 경륜이자 계획이었다(엡 1:4; 롬 8:30; 엡 3:9). 아버지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주심으로써 그 아들과 함께 택함 받은 자들을 자기의 자녀 삼고자 하셨다(롬 8:17, 30). 그러므로 그 아들이 여자의 후손으로, 즉 씨로 오셔야 했다(창 3:15). 그 씨는 유일하니(갈 3:16), 사람으로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요 1:18).

태초로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요일 1:1)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요 1:14) 대속의 모든 의를 다 이루셨다(요 19:30).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생명을 얻게 되었다(요 1:12; 롬 10:17). 사람들은 그를 죽였지만, 그 죽음으로 그가 ‘생명의 주’가 되셨다(행 3:15).

그리스도는 언약의 주(主)로서 우리와 및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엡 1:22; 4:15). 그의 중보는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에 미쳤다.

주님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 지혜, 진리이셨다. 그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 1:14, 17). 그리하여 그 진리를 알면 생명의 은혜가 따르게 되었다(요 17:3). 그 진리로 사람들이 자유롭고 거룩하게 되었다(요 8:32; 17:17). 그 진리는 계시된즉 이루어지므로, 권세가 있었다(마 7:29).

주님은 제사장으로서 자기 자신을 흠 없고 점 없는 제물로 드리셨다(벧전 1:19).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자 제물이셨으며, 목자이자 양이셨다. 그가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삼아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딤전 2:6; 히 10:10~12). 그는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적 기도를 드리신다(요 17:1-26; 8:34). 아버지가 맡겨 주신 자들을 하나로 잃어버리지 않으시기 위함이시다(요 6:39).

주님은 왕으로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갈 1:4; 딤전 2:6; 딛 2:14). 그의 다스리심은 본질상 그의 베푸심에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주심으로써 우리 자신을 다스리신다.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우리 속에 사시면서, 우리를 다스리신다(행 2:33; 요 14:17; 갈 2:20). 만물을 물과 양분과 햇빛을 주셔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다스리신다. 그 성령은 아들을 주시는 영이시므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칭해지신다(롬 8:9).

2.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유일하신 중보자

삼위일체 가운데 두 번째 인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한 실체이시며 동등하신 분으로서 때가 차게 되자 사람의 본성을 그 모든 본질적 속성과 통상적 연약함과 함께 취하셨으나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그녀의 실체로 성령의 능력에 의해 잉태되셔 죄는 없으셨다. 그리하여 두 순수하고 완전하며 구별된 본성들인 신격과 인성이 변질, 합성, 혼합 없이 한 인격 가운데 불가분리하게 결합되었다. 그 인격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나 한 그리스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8.2)

우리의 중보자는 아버지의 품 속에 영원히 계신 성자 하나님이시다(요 1:1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므로 계시지 아니하신 적이 없다(빌 2:6). 그는 태초에 이미 계신다(요 1:1).

성육신하신 주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본질과 실체에 있어서 성부와 성령과 동일하시며 동등하시다. 그가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피조물의 연약함을 취하셨다. 그리하여 시간과 공간에 놓이시고, 자람이 있으시며, 채움이 있으시다. 그는 자기의 인성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남자의 개입 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취하였다(마 1:20; 눅 1:35).

성육신은 성자가 인성을 취하심에 따른, 한 위격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칭한다. 성육신은 잉태에서 시작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451년 칼케돈 신경에서 천명하듯이, 그의 신성과 인성은 서로 ‘혼합 없이, 변화 없이, 분할 없이, 분리 없이’ 연합된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신성과 인성의 연합 가운데, 즉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으로서 우리를 위한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딤전 2:5). 그의 신성이 육체에 거한다(골 2:9). 그는 사람으로 오신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롬 9:5).

3. 신성과 인성의 연합 가운데서의 대속

이와 같이 주 예수는 신성에 연합된 그의 인성 가운데 거룩해지셨고 성령으로 한량없이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으로서 그 자신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지니셨고 그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하는 것을 성부는 기뻐하셨으니 거룩하시고, 죄가 없으시며, 더럽혀지지 않으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가 중보자와 보증인의 직분을 수행하기에 완전히 준비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그 직분은 스스로 맡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권세와 심판을 그의 손에 두시고 그것을 실행하라는 계명을 주신 성부에 의해서 그것에로 부름을 받으셨다.”(8.3)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주님은 신성에 따라서는 성령이 자신에게서 나오시지만(요 15:26) 인성에 따라서는 성령을 충만히 받으셨다(눅 4:1, 18). 아버지는 자기의 모든 충만을 아들에게 거하게 하셨다(골 1:19). 그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어졌다(마 11:2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부여되었다(마 28:18).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에게 감추어져 있다(골 2:3).

주님은 우리와 다름없는 영혼과 육체의 사람이 되셨지만, 죄는 없으셨다(히 2:14; 4:15). 원죄도 없으셨다. 죄성(罪性)과 죄향(罪向)과 죄행(罪行)이 모두 없으셨다. 그리하여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였다(골 2:9). 그는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므로, 무죄하여 죄인을 대신하셨다(히 7:26). 자기의 흠 없는 몸을 우리를 위한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셨다(엡 5:2; 히 9:14; 갈 1:4).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생명을 사시려고 피를 흘리셨다(레 17:11; 히 9:22). 그 무죄한 피가 우리를 살리는 새 언약의 피가 되었다(마 27:4; 고전 11:25). 그리하여 그 피를 마시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되었다(요 6:54).

4. 두 본성의 속성이 한 위격에 돌려짐

그리스도는 중보사역에 있어서 두 본성 모두에 따라 행하신다. 각 본성에 따라 그것에 고유한 것을 행하시지만 인격의 하나됨으로 인하여 한 본성에 고유한 것이 때때로 다른 본성에 의해 지명된 인격에 돌려진다.”(8.7)

우리의 중보자는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셔야 했다. 칼빈이 말하듯이 그는 홀로 하나님으로서는 죽음을 죽으실 수 없고 홀로 사람으로서는 죽음을 이기실 수 없으므로 인성에 따라서는 자기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죽음에 내주시고, 신성으로 그 죽음을 죽이시고 부활의 생명을 얻으셨다(롬 1:4) (기독교 강요, 2.12.3).

유일하신 중보자 그리스도의 인격에 신성과 인성의 모든 속성이 돌려진다. 신성에 따라서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있는 분이(골 1:16) 인성에 따라서 배고픔을 지니신다. 신성에 따라서 세상의 모든 물을 지으시고 흐르게 하시는 분이 한 모금 물이 없어 목마르다 하신다(시 147:16~18; 요 19:28). 신성에 따라서 전지하신 분이 인성에 따라서 그 날과 그 때를 모른다 하신다(마 24:36). 신성에 따라서 나사로를 살리신 분이 인성에 따라서 나사로가 어디 있는지 물으셨다(요 11:34, 43). 신성에 따라서 변화가 없으신 분이 인성에 따라서 지혜와 키가 자라신다(눅 2:52). 신성에 따라서 죽으실 수 없는 생명 자체이신 분이 인성에 따라서 죽으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선포되었다(행 20:28). 이러하니 어찌 그 인격 가운데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의 값이 무한하지 않겠는가(요 19:30; 고전 6:20)!

(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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