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살다보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수 없다. 특별한 사건이나 관계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까닭 없이 싫어하기도 한다. 그것으로 인해 고민하거나 함께 미워하고 또 우울함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모두 날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이고 독선일 뿐이다.

이것을 잘 알지 않는가. 주님께서도 미움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그것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자들이 꽤 많았고 결국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주님은 그 제자들도 그렇게 미움 받을 것이라고 예고하셨다(요 17:14). 물론 이 경우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으로 인한 미움이라고 했으니, 누군가에게 미움 받는 모든 사람이 다 제자는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미워하는 사람은 있다는 것이다. 그 무리와 좀 다르다는 것 때문에 괜히 미울 수 있다. 너무 착해서 싫고 똑똑해서 싫고 잘해서 싫고 들리는 소문 때문에 싫기도 하다. 즉 나쁘고 못해서만 싫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 자신을 보니 그렇다.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싫은 이유가 확실한 경우도 있지만 딱히 싫어할 이유를 말할 수 없는데도 싫은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또 사랑하는 이유가 뭐라 꼭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듯이 싫어하는 이유 역시 그렇다. 싫은 것이 어찌 사람뿐이랴? 음식도 싫은 것들이 많고 그 이유도 다양하다. 냄새가 싫고, 생김새가 싫기도 하고 또 그 맛은 더욱 싫을 수도 있다. 왜 그 냄새나 맛 또 그 모양이 싫은지는 설명이 쉽지 않다. 내 딸은 토마토를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토마토에 대한 나쁜 추억도 없다. 그냥 싫단다. 냄새가 싫다나.

누군가 날 싫어해도 너무 속상해하지 않아야지. 그도 그냥 내가 싫은데 어찌 하겠는가. 싫고 좋음을 어찌 강제하겠는가. 힘들겠지만 그래서 난 애쓴다. 공연히 싫어하지는 말아야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싫고, 나와 의견이 달라서 싫고 또 내 길을 반대한다고 싫어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항상 옳을 수 없고 또 절대적 기준은 더욱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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