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죽음의 값’ 치르니 ‘생명의 삯’ 얻는 ‘새 언약’ 이루시다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1. 아담과 맺은 첫 언약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커서 이성적 피조물들은 그들의 창조주로서 그에게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그의 편에서의 어떤 자발적인 낮추심이 없었다면 그 혜택을 자기들의 복과 상급으로서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그는 언약의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기뻐하셨다. 사람과 함께 시작된 첫 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이었다. 그 가운데 생명이 아담에게, 그 안에서 그의 후손에게, 완전하고 인격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약속되었다.”(7.1-2)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신 후 사람과 더불어 안식하셨다. 그리고 사람을 자녀 삼고자 언약을 맺으셨다(창 2:16~17). 첫 언약은 하나님이 아담과 맺으신 언약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아담에게 ‘인격적 순종’(obedientia personalis, personal obedience)을 요구하셨다. 아담이 처음 지음을 받은 대로 지, 정, 의(意)의 인격체로서, 의(義)와 거룩함의 원의 가운데(엡 4:24),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신 6:5; 마 22:37)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과 약속하셨다. 그가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셔서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시 113:5~6). 인생이 아무리 의롭다 한들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는데(욥 35:7), 하나님이 그 인생에게서 순종을 받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맺으신 첫 언약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소극적 순종을 조건으로 하였다. 아담은 각종의 열매를 임의로 먹게 했으니 먹을 것이 부족하지도 않았고(창 2:16), 각 생물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사물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지식이 있었으니 아는 것이 부족하지도 않았는데(창 2:19),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의 부추김으로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다(창 3:5~6).

첫 언약의 조건인 ‘행위’와 그 열매인 ‘복과 상급’은 가히 서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저 먹지 않기만 하면 영생을 주시고자 하셨는데, 아담은 그 ‘순종의 의무’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다. 그것은 ‘반역’이었다(호 6:7).

언약은 하나님이 사람과 맺은 약속으로서, 한 사람을 머리로 삼아 그 사람이 행한 대로 모든 사람에게 그 열매가 미치게 된다. 아담의 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에 대한 삯인 사망이 들어왔다(롬 5:12).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롬 5:19),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다(고전 15:22). 이것이 전가(轉嫁, imputatio, imputation)이며, 대표의 원리가 이로써 작용한다.

2.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새 언약으로 성취된 은혜언약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타락으로 자신이 그 언약을 통하여 생명을 얻기에 불능하도록 만들었으므로 주님은 통상 은혜언약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언약을 체결하기를 기뻐하셨다.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값없이, 그들이 구원을 받도록 그를 믿는 믿음을 그들에게 요구하시면서 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모든 사람들이 믿고자 뜻하고 믿을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시면서, 제공하셨다. 성경에서 이 은혜언약은 유언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지시되는데, 이는 유언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가운데 유증되는 영원한 기업과 그것에 속한 모든 것들에 관련된다.”(7.3-4)

하나님의 뜻은 불변하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하셨다. 순종해야 살게 되는데(롬 10:5; 눅 10:25~28), 아무도 순종해서 의롭다 할 육체가 없게 되었다(롬 3:20; 갈 2:16). 더 이상 율법의 행위가 살리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갈 3:21).

그리하여 하나님은 첫째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우셨다(히 10:9). 율법 외에 다른 의로 생명을 얻는 길을 내셨다(롬 3:21). 이제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시고 그 믿음을 조건으로 생명을 주시고자 하셨다(롬 3:28).

그리하여 죄 없는 사람을(히 4:15) 타락한 인류 대신 언약의 당사자로 세우셔서 순종하게 하셨다.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대속물로 드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3:16; 딤전 2:5~6). 그는 예언된 ‘여자의 후손’(창 3:15), 예비된 ‘한 몸’이셨다(히 10:5). 그가 유일하신 머리(엡 4;15; 골 1:18), 유일한 ‘주’가 되셨다(엡 4:5).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들이 믿게끔 하신다. 믿음조차 구원의 선물로 주어진다(엡 2:8). 그러므로 아무도 믿음을 자랑할 수 없다. 믿음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고전 2:5). 믿고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므로 믿고 영접한다(요 1:12~13). 하나님이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다(요 6:44).

은혜언약은 그리스도의 다 이루신 의를 구원의 전 과정의 의로 삼는다(요 19:30; 롬 8:30). 이 언약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효력이 발생하니, 유언(testamentum, testament)의 성격을 지닌다(히 9:15~17). ‘죽음의 값’을 치르니 ‘생명의 삯’을 얻게 되었다. 청교도 신학자 오웬(John Owen)이 칭하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음의 죽음으로서의 죽음’(a death as the death of death), 곧 부활의 죽음이므로, 그와 함께 죽는 자는 그와 함께 살게 된다. 이것이 ‘더 좋은 언약’(히 7:22; 8:6) 곧 ‘새 언약’(히 8:13; 9:15; 고전 11:25)이다.

3. 언약의 유일한 실체이신 그리스도

이 언약은 율법의 시대와 복음의 시대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거행되었다. 율법 아래서 약속들, 예언들, 제사들, 할례, 유월절 양, 그리고 유대백성에게 전해진 다른 모형들과 규례들, 이 모든 것은 당시에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데 충분했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택함 받은 자들을 약속된 메시야를 믿는 믿음 가운데 가르치고 덕을 세워가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 메시야에 의해서 그들이 완전한 죄사함과 영원한 구원에 이르렀다. 이것이 구약이라고 불린다.”(7.5)

은혜언약과 그 성취인 새 언약의 실체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를 믿음이 구원의 유일한 조건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졌다(창 15:6). 그의 할례는 무할례 때의 믿음을 인 친 것이었다(롬 4:11). 그가 이삭을 바친 것은 하나님이 죽은 자를 능히 다시 살리실 줄 믿었기 때문이다(히 11:19).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지만 행함은 믿음의 열매일 뿐 조건이 아니다(약 2:26). 우리는 이제 죽은 예수를 살리신 이를 믿는다(롬 4:24). 아브라함의 복도 그 예수 안에 있다(갈 3:14). 아브라함은 예수 볼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였다(요 8:56). 구약 백성은 바라며 믿었다. 그들의 믿음의 실상이 그리스도셨다(히 11:1).

4. 새로운 언약의 은혜를 누리는 말씀과 성례의 방편

복음 아래서 그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제시되셨을 때 이 언약이 집행되는 규례들은 말씀의 선포와 성례들인 세례와 성찬의 거행이다. 비록 수가 더 적고 더욱 단순하며 외적 영광이 덜하게 거행되나 이들 가운데 그 언약은 더욱 충만하고 명확하며 영적으로 유효하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든 나라들에 표지된다. 이것이 신약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실체에 있어서 다른 두 개의 은혜언약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은혜언약이 다양한 경륜들 아래서 존재한다.”(7.6)

첫 언약과 은혜언약, 그리고 그 성취인 새 언약은 경륜(dispensatio, dispensation)에 있어서는 다양하나 실체(substantia, substance)에 있어서는 하나(unum, one)이다. 언약과 절기와 제사로 계시된 구약의 모든 예표들이 그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오심과 다 이루심으로 성취되었다. 새로운 은혜를 누리는 첫째 방편은 새로운 언약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는 자가 복되다(계 1:3). 믿음은 들음이며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롬 10:17).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그 말씀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다. 그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온전한 구원을 이룬다(롬 10:8~10; 신 30:11~14).

새 언약의 은혜로 세례와 성찬의 두 성례가 제정되었다. 세례와 성찬의 실체는 그리스도이시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시작의 표이고, 성찬은 그 계속의 표이다. 세례는 칭의의 표이고, 성찬은 성화의 표이다. 칭의가 없는 성화가 없듯이, 즉 칭의가 성화의 시작이듯이, 세례가 없는 성찬은 없다. 세례가 거듭남과 입교 즉 ‘살아남의 표’라면, 성찬은 ‘살아감의 표’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오직 이 두 성례만이 있다.

(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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