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죄가 더한 곳에 은혜를 더하시고 영광 받고자 하신다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1. 첫 번째 사람 아담의 불순종

우리의 첫 번째 조상들은 사탄의 궤계와 유혹에 빠져 금지된 열매를 먹는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를 경영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그의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에 따라 그들의 이 죄를 허용하기를 기뻐하셨다.”(6.1)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지닌 사람에게서 인격적 순종을 받으시고 그 영광 가운데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아담을 대표로 삼아 에덴의 동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 언약은 순종을 조건으로 요구하되, 먹지 않으면 되는 소극적 순종이었다(창 2:16~19). 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되나,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반역이 된다.

그러나 아담은 하지 말라는 것을 했다. 아담은 사탄의 조종을 받는 간교한 뱀의 꾐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창 3:1~14; 고후 11:3). 아담에게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아담의 죄는 아담 자신의 죄였으며 그 책임은 오로지 아담에게만 있었으므로, 죄의 삯인 사망의 형벌이 아담에게 가해졌다(롬 6:23). 그런데 언약의 대표의 원리에 따라, 아담의 죄가 그 형벌과 함께 모든 인류에게 전가(轉嫁)되었다. 이 전가된 죄가 원죄(peccatum originale, original sin)이다.

원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하나님은 아담의 죄에 대해서 단지 방임하지 않으시고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에 따라 ‘허용하기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맺으셔서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그 삯인 사망에 처하도록 하신 것은(롬 5:12~19), 새로운 언약의 머리이신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백성을 구원하여 자녀 삼고자 하심에 있었다(고전 15:45). 하나님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게 하심으로써, 모든 것이 은혜 위에 은혜임을 드러내시면서, 영광을 받고자 하신 것이었다(롬 5:20; 요 1:16).

아담의 죄는 본질상 불순종, 배은망덕, 교만에서 비롯되었다. 첫째, 하나님은 절대 순종을 요구하신다. 절대 순종 가운데 절대적인 사랑과 돌봄을 베푸신다.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은 이 절대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언약의 대의는 과일 하나의 물질적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징으로 삼는 창조주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에 있다.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므로 악을 모르신다. 그런데 사탄이 악을 도입하여 그것을 선과 섞어 버렸다. 그리하여 선과 악이 상대적이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의 상대성은 그 자체가 곧 죄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적 ‘예’만이 선이고, 순종이며, 복이다(고후 1:18~20).

둘째, 하나님은 인류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고, 인류와 안식하셨다. 타락 전 인류에게는 아름다운 거처와 가정과 다스리는 권세와 이름을 짓는 지혜와 모든 것을 먹는 누림이 있었다. 그런데 인류가 아무 것도 모자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였다(창 3:5). 이는 감사를 모르는 배은망덕이었다. 감사치 않음이 곧 죄이다(롬 1:21).

셋째, 죄는 자기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의 고상함을 지녔으나, 하나님의 품속에 거하는 한에 있어서 그러하다. 사람은 피조물의 의존성(依存性, dependentia, dependence)을 버리고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유 1:6)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을 때(창 3:5), 그 교만으로 패망하여(잠 16:18) 최초의 고상함을 상실하고 말았다(창 3:16-20). 그리하여 하나님과 거닐며 대화를 하던 존재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창 3:10).

2. 사망의 죄책과 오염에 따른 전적 무능과 전적 부패

이 죄에 의해서 그들은 그들의 원의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하였고 그리하여 죄 가운데 죽은 자들이 되었고 영혼과 몸의 모든 능력과 부분에 있어서 전적으로 오염되었다.”(6.2)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류는 창조의 때에 하나님이 주신 선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상실하였다(엡 4:24). 이러한 원의의 상실로 더 이상 인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마음이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여 모든 계획이 무익하고 악하며 단 하나의 의인도 없고 죄를 깨닫는 자도 없으며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했으니,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함이 없었다(롬 3:10~19; 창 6:5; 렘 17: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경외이다. 경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시 147:11; 히 11:6).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그들에게 엄습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저주의 두려움이었다(창 3:8). 인류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중간에 막힌 담이 생긴 것이다(엡 2:14).

죄로 인하여 아담의 죄책과 오염이 모든 사람에게 생래적으로 전가되었다(시 51:5). 죄의 책임은 사망의 형벌이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그 삯으로 주어져 누구나 생명에서 떠나 있게 되었다(롬 5:12; 요일 3:4; 엡 4:18). 그리고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하게 되었다(시 14:1~3; 53:1~3). 그 오염이 영혼과 육체 모두에 미쳤다. 칼빈이 말하듯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홍수와 같이 죄가 차서 넘쳐흐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곳도 성한 곳이 없게 되었다(기독교 강요, 2.1.9).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따라 지음을 받은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게 되었다(롬 8:7-8).

3. 원죄: 언약적 전가에 따른 죄

그들은 모든 인류의 뿌리였으므로 통상적 출생에 의해 그들로부터 태어난 그들의 모든 후손에게 이 죄의 책임이 전가되었으며 죄 가운데서의 동일한 죽음과 부패한 본성이 전파되었다. 우리가 모든 선에 대하여 전적으로 마음을 멀리하고, 무능하며, 반대편에 서고 온전히 모든 악에 기울여지는 이 원래의 부패로부터 모든 실질적 죄가 나온다.”(6.3-4)

사람은 누구나 원죄에 속하고 그 가운데 자기의 죄를 짓는다. 죄가 모든 사람을 지배한다(롬 6:12). 모든 사람이 불의에 매여 산다(행 8:23). 죽음이 두려워 사망의 종 노릇하게 된다(롬 5:16~17; 히 2:15). 의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고, 죄에 대해서 살아 있는 자가 된다(롬 6:11). 죄가 죽을 몸을 지배하여 불의의 병기가 되고(롬 6:12), 의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행하나 죄에 매여 사는 죄의 종이 된다(롬 6:20). 그리하여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게 된다(욥 15:16). 내가 살고자 하나 죄만 살아나고 나는 죽게 된다(롬 7:9). 이렇듯 원죄에 따른 전가는 죄의 책임(罪責)인 사망의 형벌과 오염에 모두 미친다.

4. 죄의 현상과 세 가지 죽음 

본성의 이러한 부패는 이 땅의 삶 동안 중생한 자들 가운데도 남아 있다. 비록 그 부패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죄되고 극복된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와 그 모든 충동은 참으로 그리고 고유하게 죄이다. 모든 죄는 원죄이든 실질적 죄이든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범하는 것으로서 그 법에 반하며 그 자체의 본성상 죄인에게 죄책을 초래한다. 이로써 그는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에 매이고 그리하여 모든 영적, 현세적, 영원적 비참과 함께 죽음에 복속하게 된다.”(6.5-6)

거듭난 사람에게도 육신의 소욕이 남아 있다.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성령의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그리스도께 날마다 자라간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란다(골 2:19). 그러나 여전히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부대끼는 곤고함이 없지 않다(롬 5:17; 롬 7:24).

인류는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이 되었고(롬 9:22), 경건하고 올바른 삶의 규범으로 주어진 율법이 저주거리가 되었다.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니 하나님의 법이 하나님을 피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려고도 않고, 굴복할 수도 없게 되었다(롬 8:7). 그리하여 가급적 법을 피하고, 법 없는 백성 같이, 자기의 소견에 좋을 대로 살고자 한다(삿 17:6; 21:25).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이 된 것이다(롬 8: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거하지 아니하면(롬 6:14), 모두가 그 법의 저주 아래 머물게 된다(갈 3:10; 신 27:26).

이는 타락한 인류가 세 가지 사망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영적 사망이다. 이는 여호와를 떠나는 것이다. 죄를 짓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는 것이 곧 사망이다. 이 사망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다(요 14:17; 마 1:13; 갈 2;20). 둘째, 현세적 사망이다. 이는 이 땅의 삶이 끝나는,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초래하는, 수명에 따른 죽음을 뜻한다. 셋째, 영원한 죽음이다. 이는 영원한 형벌을 의미한다.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사망이 더 이상 왕 노릇하지 않고 생명이 왕 노릇하는 자들은 이 죽음을 피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나 죽으나 생명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롬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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