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우리 총회는 오로지 칼빈주의 보수신학, 즉 개혁신학의 순수성을 사수하기 위하여 모든 부동산과 유지재단 등을 다 포기하고 허허벌판에서 시작하여 눈물겨운 교단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신학적 퓨리티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순수함만을 앞세우다보면 분리주의자가 될 수 있다.

우리 총회가 매킨타이어를 배격한 것은 그가 너무 분리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학적 순수성을 지킨다고 분리주의자가 되면 안 된다. 우리 총회는 장자교단이라고 한다. 장자는 동생들이 잘못된 길로 가도 아우르며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총회는 신학의 퓨리티를 철저하게 지키되, 유니티를 주도해야한다.

이것 역시 신학적, 신앙적 유니티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교회생태계를 보호하고 공교회를 세우는 사역적 차원의 유니티를 의미한다. 생태계는 일반사회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환경단체들이 왜 생태계 관리와 복원을 위해 애쓰는가. 세계 각국 정상들이 왜 기후변화협약까지 하며 자연 생태계 복원을 위해 목매고 있는가. 환경·생태계가 파괴되면 우리의 생존이 위협 받고 생명 사회가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교회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교단이 아무리 순수성을 지켜도 다른 교단이 무너지면 우리도 무너진다. 우리 교단이 연합운동을 주도하지 못하면 게토화되고 고립되다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청교도가 그랬고 언약도가 그랬지 않는가.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게 퓨리티와 유니티의 조화다.

오늘날도 무조건 퓨리티(Purity·순수성)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역의 방법과 다양성을 모르고 무조건 남을 정죄하고 공동체를 분리하는 성향이 있다. 반면에 유니티(Unity·통일성)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무조건 하나됨만 주장하다가 포용주의, 혼합주의로 빠져 버린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퓨리티와 유니티의 갈등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까 내부의 소모전을 하다가 공멸의 나락으로 추락해 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도 퓨리티를 위장한 자기주장이나 사욕을 앞세워 갈등과 분열을 촉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각 교단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지켜야 하지만, 퓨리티를 앞세워 수구적 주장과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위장된 퓨리티의 가면을 쓰고 자기 집단의 고집을 위하여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며 분열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한 유니티의 가면을 쓰고 종교다원주의로 빠지고 바벨론 음녀의 종교와 놀아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은 신학적 퓨리티를 정말 생명처럼 지키되, 교회생태계를 보호하고 공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연합운동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동성애나 이슬람을 막는다든지, 반기독교 악법을 막으면서 한국교회 전체를 살리고 이끌어가는 연합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신학과 신앙이 때 묻지 않게 더 신학적 정체성과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총회는 더 견고한 개혁신학의 축적 위에서 현실적인 장자교단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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