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구경 5.56mm, 작동방식 가스압, 무게 2.86g, 길이 99cm, 총열 50.8cm, 최대사거리 2653m, 유효사거리 460m, 총구속도 975m/s, 최대발사속도 700~800발/m> 이상은 일반 군인들이 사용하는 개인화기 M16 소총의 제원이다.

군 복무를 했던 사람이라면 기억날 것이다. 이것을 ‘제원’ 즉 스펙(specifications)이라고 한다. 원래 무기의 성능을 밝히기 위한 표시가 스펙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에게 주로 사용된다. ‘스펙이 좋네, 나쁘네’ 하면서. 무기나 기계에 사용될 제원이 사람에게 사용되는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니 어느새 사람의 상품화에 벌써 적응한 모양이다.

사람이 시장에 내놓고 팔리길 기다리는 상품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빨리 그리고 좋은 가격에 팔리도록 하려고 포장도 잘하고 제원을 표시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그것을 선전하기에 열을 올린다. 젊은이들은 더욱 그렇다. 온갖 스펙으로 무장해서 ‘인간 시장’에서 디스플레이하고 팔리기를 기다린다. 그럼에도 팔리지(정규직) 않고 빌려 쓰는(비정규직 또는 알바) 사람만 많으니 우리 젊은이들은 이 나라를 비아냥대며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자기가 사는 나라를 스스로 비아냥거려봐야 전혀 득 될 것이 없는 줄 알면서도.

스펙, 스펙 하는데 요즘 젊은이처럼 스펙이 좋은 때가 우리 역사 속에 언제 있었는가. 세계 어느 나라 젊은이들이 우리만큼 스펙이 좋겠는가. 대학 진학률 68%.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 독일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기이한 나라다. 학력 인플레가 문제이긴 하지만 높은 학력에 뛰어난 외국어 실력, 한 두 개의 자격증은 기본, 모든 능력을 장착한 놀라운 스펙에도 불구하고 팔리지는 않으니 답답하지 않겠는가?

내가 누구인지를 짧은 스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은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은 결코 팔리길 기다리는 상품이 아니다. 어느새 목회자조차 스펙에 매달린다. 스펙 쌓기 위해 학력에 각종 세미나 수료증까지 장착하고, 이력 관리를 위해 브랜드가치(?) 높은 교회를 거치고 싶어 한다. 사람이 그립다. 상품 말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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