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삶과 직업 통해 산업혁명 등에 영향”
조병수 대표 “직업 소명으로 여기고 성실 중시 … 가난한 이웃에 선행 베풀기에 힘써”

프랑스위그노연구소(소장:조병수 목사)가 2월 20일 서울 서초구 숭신교회에서 ‘프랑스위그노연구소 정례회 100인 초청 특강’을 진행했다.

프랑스위그노연구소는 지난 2018년 프랑스 신교(프로테스탄트)를 뜻하는 위그노의 신앙고백과 공동체성과 일상을 연구하여 한국교회에 유익을 끼치고자 설립했다. 위그노들은 16세기 가톨릭에 문제를 제기한 독일의 종교개혁가 루터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제네바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인 칼빈의 사상으로 재무장했다. 위그노들은 프랑스 왕정으로부터 프랑스 혁명을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다양한 박해를 받았다. 하룻밤에 만 명 이상이나 살해된 바돌로매 대학살 사건은 유명하다. 위그노들은 극심한 박해 아래서도 예배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고 처음부터 프랑스(갈리아) 신앙고백을 작성하여 교리와 신학을 확립했다. 또 교회 사이에 자율, 평등, 협력이라는 원칙을 갖춘 교회관을 소유했고 교회 정치제도를 확립하여 역할을 달리하는 직분(목사, 장로, 집사)을 세우고, 안건을 결정하는 회의(당회, 시찰회, 노회, 총회)를 만들었다. 위그노는 교회가 불안한 상황과 처참한 고난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형이 되었다.

프랑스위그노연구소 대표 조병수 목사가 ‘100인 초청 특강’에서 프랑스 위그노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조 목사는 위그노는 불안정한 상황과 고난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위그노연구소 대표 조병수 목사가 ‘100인 초청 특강’에서 프랑스 위그노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조 목사는 위그노는 불안정한 상황과 고난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었다고 강조했다.

특강에서 첫 번째 강연을 한 조병수 대표(프랑스위그노연구소)는 위그노의 등장 배경과 박해의 역사를 소개했다. 오랜 박해로 인해 성도들은 가톨릭으로 전향하기도 했고 비밀신자로서 이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1670년경에는 90만명의 신자 가운데 15~17만명이 영국, 화란, 독일 등지로 탈출을 하기도 했고 무력전쟁으로 맞서다가 수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갈리아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여 교회직분을 정했다. 즉 목사는 예배 집례, 설교, 목양(목자의 역할)을 하고, 장로는 치리(성도의 도덕 유지), 집사는 재정과 구휼에 힘쓰도록 했다. 회의 제도도 정립해서 당회는 도덕강화, 교회사안 처리, 교회 관리 행정, 시찰회는 목사의 설교를 검증, 노회는 목사의 생계 감독을 책임지도록 했다. “어떤 교회와 직원(목사, 장로, 집사)도 다른 교회와 직원에 대하여 우위권이나 지배권을 갖지 못한다”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위그노들은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고 성실함을 중시했으며 절약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후원하고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면서 ”위그노들은 삶과 직업을 통해 영국의 산업혁명(비단, 기계, 노예산업), 독일프러시아의 경제발전(비단, 담배), 스위스의 시계와 초콜릿 산업, 남아공의 포도주 산업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조병수 대표는 세 번째 특강 강사로도 나서 ‘제네바아카데미’의 의미를 설명했다. 제네바아케데미는 칼빈이 중심이 되어 1559년 삐에르교회에서 개교했다. 조 대표는 제네바아카데미의 교원 구성과 교육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제네바아카데미는 1564년까지 초등교육과정에 1200명, 고등교육과정에 300명의 학생이 등록하여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네바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들은 아카데미 교수, 지역교회 목회, 선교사 등으로 활동했다.

조 대표는 “제네바아카데미는 칼빈의 의도와 달리 변질될 위험 요소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다”면서 “그 이유는 시의회와 목사회라는 이중의 지도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시의회는 교사들과 교수들에게 봉급을 지불했고, 목사회는 교육을 감독했다. 시의회는 학교가 시의 이익에 유용한 기관이 되기를 원했고, 목사회는 교회의 확장을 위해 미래의 목사를 길러내는 경건한 학교를 꿈꿨다. 제네바 시의회는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아카데미 교육과정을 확대할 것은 강요하기에 이르렀다(펜싱, 승마, 법학, 의학 등). 실제 칼빈 사후에 법학과 의학 과목 확장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조 대표는 “이같은 역사는 학교가 처음 목적을 유지하며 끝까지 순수하게 남으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서머나교회 바르게 읽기’를 주제로 두 번째 주제강의를 한 이복우 교수(합신)는 “계시록에서 예수께서 편지하신 아시아의 일곱교회는 온 세계의 교회를 대표하며 각 교회에 주신 개별적 메시지는 우주적 교회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도전”이라면서 “그러므로 서머나교회의 특징은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가 본받아야 하는 교회의 교회됨”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서머나교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고난과 가난과 비난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서머나교회의 이 두 가지 특징은 위그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신앙의 원리이자 삶이기도 했다”면서 “위그노들에게 삶의 중심은 주일이었고, 주일의 활동 중심은 예배, 예배에서 중심은 설교, 설교의 중심은 성경본문 강론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위그노에게 고난은 일상이었다”면서 “종교개혁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재산몰수, 지위박탈, 고문과 투옥, 추방과 갤리선 노역, 화형과 교수형 등 신념이 다른 사람들이 가하는 온갖 박해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신자도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 전심전력해야 한다”면서 “서머나교회의 본을 따르고 위그노들의 신앙 정신과 삶을 계승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