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나는 하나님이 주신 불붙는 소명감으로 인해 불교와 유교에 완고하신 부모님의 극심한 핍박을 받고 집에서 쫓겨났다. 그때 내가 다니던 교회는 대구동부교회에서 열린 64회 총회 때 분리된 비주류교단에 속한 교회였다. 교계 기자들은 비주류 교단을 합동보수라고 칭하였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물론 하나님의 인도였지만) 광주신학교 대학부를 가게 되었다.

그때 4년 동안 신학교를 다니면서 채플시간에 개인의 영성, 뜨거운 소명감, 첫 사랑과 초심, 깊은 영성 등을 강조하는 설교를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대부분 교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설교였다. “우리는 성경적 가치와 진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교단을 분리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합동이고 보수교단입니다. 우리는 이런 교단의 정체성을 갖고 교단을 지키고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통성기도 시간에도 개인적인 영성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보수 신학을 지키는 것과 교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기도를 하도록 하였다. 물론 신학이 얼마나 중요하고 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는 유익도 있었지만 채플시간을 기다리는 기대감과 사모함은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 후에 교단 명칭이 개혁교단으로 바뀌었다. 광주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신학본과 과정인 개혁신학연구원에 입학했지만 그때의 채플시간도 비슷했다. 그러다보니까 나의 사고와 행동반경은 우물 안의 개구리 식이었고, 합동교단에 대한 편협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누구 하나 부교역자로 써 준 교회가 없었다. 그래서 혈혈단신으로 서울에서 개척을 했다. 그러나 개혁교단의 간판을 걸고 사람을 모은다는 것은 정말 피눈물 나는 일이었다. 그때 비로소 합동교단의 브랜드와 프리미엄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우리 교단의 선진들은 교단을 갈라서 이렇게 후배들을 고생시키는지 원망 아닌 원망을 하게 되었다.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후 합동교단의 간판을 걸고 개척하는 이웃교회 목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오뚝이처럼 맨땅에서 맨발과 맨손으로 교회를 개척해서 수천 명의 교회를 이루었다. 그러던 어느날 합동과 개혁측이 하나를 이룬다고 했다. 꿈같은 소리로 들렸지만 괴소문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전중앙교회에서 열린 90회 총회 때 눈물을 흘리며 총회 현장에 들어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로 감격스럽다. 그래서 지금은 교단 합동을 시도했던 고 정규오 목사님이 정말로 고맙게 느껴진다. 실제적으로 합동을 성사시킨 서기행, 홍정이 증경총회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그 감사하는 마음으로 총신을 사랑하고 우리 총회를 사랑한다. 아직도 구합동과 개혁측에 대한 어색함과 낯선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교단 100년을 설계하며 손잡고 걸어가야 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