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지역 주민 눈높이서 사회복지사역 진력
건강한 소통과 신뢰 바탕, 복음열매 맺어간다

장기요양보호시설 사랑의집 입소자들과 교감하는 조상래 목사.
장기요양보호시설 사랑의집 입소자들과 교감하는 조상래 목사.

한국교회는 근래 대안적 목회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을목회가 있다. 마을목회의 핵심은 목회의 범주를 교회 울타리 안에서 교회가 자리한 지역 전체를 목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회가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직간접적으로 전하는 데 목적이 있다.

마을목회 실현을 위해 사회복지사업이나 마을기업 등 여러 방법이 대두되고 있고, 실제 열매를 맺는 교회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마을목회 실현을 위한 형태나 방법은 지역의 주민들과 소통하고 신뢰를 쌓는 일종의 도구여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특정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을을 이끄는 것을 마을목회로 여기는 것에 대한 비판이 벌써부터 나올 정도면,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가치성이 떨어질 경우는 자연스레 존재감이 약화되는 모순이 빠질 수 있다. 따라서 목회는 방법이 아니라 관계이며, 교회라는 존재 자체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여김을 받는 것이 마을목회의 핵심이라는 각인이 다시금 필요해 보인다.

경북 의성군 봉양면의 덕은교회(조상래 목사)는 마을목회를 표방하지 않았음에도 사역과 정신 모든 부분에서 마을목회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덕은교회는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호시설인 ‘사랑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형태로 보면 덕은교회도 사회복지로 마을목회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집을 운영하기까지의 과정과 지금의 목회 면면을 보면, 진정한 의미의 마을목회를 구현하고 있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출향민들이 편하게 고향을 방문하도록 돕기 위해 덕은교회은 화단을 가꾸고 화장실과 주차장을 개방하고 있다.
출향민들이 편하게 고향을 방문하도록 돕기 위해 덕은교회은 화단을 가꾸고 화장실과 주차장을 개방하고 있다.

85년 된 교회에 1999년 12월에 조상래 목사가 부임했다. 당시 마을은 박 씨와 신 씨 성 집성촌이라 관계가 좋지 않았다. 더욱이 80년 넘는 역사 속에 3년 이상 재임한 목회자는 조 목사를 포함해 단 2명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성도는 물론 동네 주민들에게 목회자의 존재는 별로였다. 그러나 지금의 조상래 목사는 동민들로부터 “우리 목사님”이라 부르고, “덕은교회 때문에 우리 마을이 복 받았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믿지 않는 주민조차도 교회 행사나 절기에 참여하기도 한다. 도대체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을까.

조상래 목사는 부임과 동시에 목회자 존재감 알리기에 나섰다. 동네 경조사에 무조건 참석하는데, 이때 교회 명의의 부조금 외에 조 목사 개인의 이름으로 부조하고 있다. 명절과 분기별 마을 청소와 재활용 수집 때도 외출을 하지 않는다면 직접 나가서 일손을 거들고 있다. 면민체육대회가 열릴 때면 재정 후원뿐 아니라 직접 선수로 출전해 힘을 보탰다. 차량봉사나 전문가 연결시켜주기 등 위급한 상황에 처한 주민들을 돕는 것도 일상이었다. 조 목사의 이런 진정성은 동네 사람들에게 잠시 있다가 떠날 젊은 목사가 아니라,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존재가 되게 했다.

그랬다. 조상래 목사는 덕은교회에서 목회를 하지만 그의 목회 대상은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를 포함해 80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마을주민들이었다. 마을 전체를 목회 대상으로 삼으면 목회관점으로 지역민들을 바라보게 되는 법. 자연스레 지역과 주민이 필요로 하는 영적·상황적 필요를 알게 되고, 그 필요가 덕은교회가 펼쳐야할 사역과제가 되었다.

마을의 목회자로서 조상래 목사 눈에 들어온 주민의 필요는 많았다. 대표적으로 전원교회, 복지시설인 사랑의집, 동민들을 위한 시설 제공을 꼽을 수 있다. 덕은교회가 전원교회를 표방한 이유도 전적으로 동민들 때문이었다. 농번기에 부모의 일손을 돕기 위해 자녀들이 오지만 대다수 당일치기로 돌아갔다고 한다. 재래식 화장실 때문에 손자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덕은교회는 주민들에게 교회 화장실과 함께 주차장을 마음껏 이용하도록 했다. 또한 부지를 매입해 교회 주변을 공원처럼 꾸몄다.

사랑의집 역시도 발단은 동네주민 때문이었다. 조 목사는 고령화 특성상 교인들 가운데 일반요양시설에 입소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 치매가 걸릴 경우 기도조차 잊어버리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중 마을 어르신 가운데 조금의 돌봄만 있어도 피할 수 있었던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는 상황을 목격했다. 그때 조 목사는 “이 마을에 교회를 세운 목적이 무엇일까? 마을의 교회 역할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고, 이를 장로들과 고민했다.

손을 맞잡은 조상래 목사와 덕은교회 장로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순종하는 팀워크가 덕은교회 변화를 이끈 동력이었다.
손을 맞잡은 조상래 목사와 덕은교회 장로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순종하는 팀워크가 덕은교회 변화를 이끈 동력이었다.

그래서 교인을 포함해 홀로 지내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생활을 2009년도에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현행법에 저촉되면 안 된다는 지적을 받고 이듬해 요양시설로 허가를 받았다. 이것이 지금의 장기요양보호시설인 ‘사랑의집’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제는 목사는 몰라도 교회가 운영하는 사랑의집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라고 조 목사는 흡족해 한다.

덕은교회 앞마당에는 독특한 시설 하나가 있다. 지하수를 받을 수 있는 취수장이 그것이다. 이 지역 특산물이 자두, 복숭아, 마늘, 쌀이다 보니 경작 시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물을 받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700미터 떨어진 냇가에 가서 30분 이상 물을 받아야 했다. 마침 덕은교회가 사랑의집 건축을 위해 논을 매립하면서 파놓은 우물이 있었다. 이에 덕은교회는 주민들의 농사 편의를 위해 교회 입구에 전기펌프를 설치했다. 이 때문에 스위치만 켜면 5분 이내에 한가득 물을 받을 수 있어 동네 주민 모두가 좋아하고, 교회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산다. 이제는 이웃 마을 주민들도 이곳에서 물을 받아갈 정도가 됐다.

덕은교회의 마을주민 섬김은 이외에도 다채롭다. 향후 마련할 찜질방, 게이트볼장, 풋살장 역시도 동민들을 위한 것이다.

목회범주의 확장은 덕은교회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복음의 열매가 감사가 넘친다. 특히 100명도 채 안 되는 시골교회가 감히 꿈꿀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너끈하게 감당하는 저력있는 교회가 되었다. 사랑의집 건립 등을 위해 3300평 부지를 구입한 것도, 도시 교회 못지않은 세련된 예배당 리모델링을 마친 것도, 케냐 탄자니아 필리핀 캄보디아에 교회나 학교도서관 건축 등 왕성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목회의 지경을 넓힌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덕은교회의 변화는 조상래 목사의 목회적 안목과 더불어 덕은교회 장로들의 목회자를 향한 믿음과 전적인 협력이 큰 역할을 감당했다. 마을을 향한, 교회가 추구할 방향을 이야기하면 장로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순종한다”는 정신으로 든든한 협력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었다고 조 목사는 고백한다.

조상래 목사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다. 초고령화로 인한 어려움이 닥칠 미래를 대비해 교회의 시설과 교회 운영에 큰 어려움 없도록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과, 50%까지 끌어올린 마을복음화를 80% 이상 되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조상래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순종하자는 생각을 장로님들과 수시로 공유했습니다. 이것이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렀던 생각들이 복음 확장을 위한 시야와 생각들을 넓게 가진 원동력이었습니다. 함께 동역해 주신 장로님들과 성도님들께 감사함이 큽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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