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정말 이영수 목사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탁월한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우리 교단 발전에 이영수 목사를 빼놓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찌 과가 없었겠는가. 그는 52회 총회 회록서기부터 시작해서 65회 총회장에 이르기까지 14년 동안 총회 임원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1인 독주정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장로회 정치원칙을 위반했다는 견해가 많다. 물론 정규오 목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분 역시 10여 년을 그렇게 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특별한 시대상황에서 이러한 형태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1인 독주와 장기집권으로 인해 정치적인 적수들이 생겨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정치라는 건, 반대세력과 대화도 하며 품으며 가야 한다. 그리고 반대세력에게도 적절하게 자리배분을 해 줘야 한다. 물론 이영수 목사는 누구보다 원만한 성품을 가지고 천재적 대인관계를 발휘하였다. 그런 성품과 대인관계력으로 초창기에는 이영수 목사가 탁월한 정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반대파를 끌어안지 못해서 반대파는 살기 어린 정적이 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71년 이후 총신을 장악한 이영수 목사는 김인득 장로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불신하며 제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부메랑으로 이영수 목사는 정화파의 일원이었던 김인득 장로에 의해 퇴출이 되지 않았던가. 이영수 목사 반대파 중 헌병대 간부나 정보기관 출신들이 스토커처럼 그를 따라다니면서 그에 대한 온갖 정보를 캐서 정화파에게 제공을 한 것이다. 그 정보 중 일부는 가짜로 판명되기도 하였지만, 어쨌든 그의 주변 사람들의 부도덕한 정치와 행동이 이영수 목사에게 큰 누를 끼치게 한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재등용의 한계와 불균형으로 총신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였다. 처음에는 그가 지역 분배를 잘하여 인재등용을 하였지만, 서서히 인재등용을 영남 중심으로 하였다. 예컨대 총신의 기라성 같은 교수들을 배제하고 젊은 영남 교수를 학장으로 임명함으로써 거목 같은 교수들이 총신을 떠나게 한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실수는 1979년 비주류파를 끝까지 품지 못하고 사실상 퇴출을 시킨 행위다.

물론 일련의 과정에 있어서 정규오 목사의 정치행위가 단초를 제공한 면도 있지만, 당시에 이영수 목사가 비주류를 품었다면 개혁측과의 분열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교육비전의 과욕으로 중부대학을 설립하여 재정난에 허덕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총회 돈을 임차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발목이 잡혀서 총회에서 면직을 당하는, 일생 최대의 수치를 당하게 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찌 노회를 통하여 면직을 하지 않고 총회가 직접 목사를 면직할 수 있는가.

물론 다행히 정화파에 속한 서기행 목사 등이 노력하여 총회에서 원인무효를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분명 이영수 목사는 천하의 정치인이고 우리 교단 발전에 엄청난 공을 세운 사람이다. 그러나 과욕, 즉 정치과욕, 명예과욕, 성공과욕, 교권과욕을 다스리지 못해서 몰락하게 된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과욕은 없는가. 그 과욕으로 총회 교권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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