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누군가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기에 어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를 보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 그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들고, 말투가 싫고 또 걸음걸이가 마음에 걸린다. 왜 늘 그런 스타일의 옷을 입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또 반짝거리는 넥타이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모든 면이 다 좋은 사람이 있을까? 있다 싶었는데 결국 그 결점이 드러나서 사람이란 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아무 볼 것이 없다 싶은데도 눈웃음 하나가 마음에 들어 평생 함께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눈빛에 끌려 결혼했다며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 한다. 주변 모두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데 어떤 한 사람은 그와 평생 함께 갈 생각을 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다. 싫은 것 하나로 밀어내기도 하고 또 좋은 것 하나에도 끌리는 것이 세상이다. 결국 내 눈이 문제이기도 하고 또 보배이기도 하다.

우리 하나님은 어떠실까? 소박하고 평범함에도 그 하나를 귀하게 여기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약점이라고 여기는 그것조차 귀하게 여기시고 높이 평가하시고 또 놀랍게 사용하시기도 한다.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한 여인을 사사로 세우셨고, 왼손잡이지만 그에게 힘을 주시며 이스라엘을 구하게도 하셨다. 기생의 아들이라고 따돌림 당했을 사람도 높이 들어 사용하셨다.

내가 그렇다. 평범한 학력,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키, 풍성하지 못한 머리카락까지, 외모든 내면이든 온통 약점 투성인데도 아내는 나를 사랑했고 변함없이 함께 가며 끊임없이 격려해주고 있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도 여기까지 끌어주시고 사용해 주셨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짧은 시인데도 그 울림은 크고 길게 남는다. 마음에 안 들고, 눈에 안 차고, 또 내 기준에 비해 나쁘다 싶은 점만 보고 또 지적하자면 한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비교적 좋아 보이는 것 하나에 눈이 가면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내가 그렇고 또 당신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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