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목사(대구 태평교회)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견고한 일꾼으로 세우십니다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렘 15:21)

김성호 목사(대구 태평교회)
김성호 목사(대구 태평교회)

소명의 위기

누구에게나 소명의 위기는 있습니다. 위대한 설교자였던 스펄전 목사의 교회 바로 옆에서 목회하던 한 목사님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스펄전 목사님에게는 저렇게 많은 회중들을 붙여주시는데, 자기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것인지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스펄전 목사님이 자신보다 월등하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고 합니다.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한 깨달음을 주셨답니다. “스펄전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기에 많은 사람을 붙여주어야만 목회를 할 수 있지만, 너는 넉넉히 참고 견딜 수 있으니 그것을 사명으로 알고 잘 감당하여라!”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역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종종 내가 정말로 소명을 받은 것이 맞는지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도 정말 우리가 훌륭한 신앙인으로 꼽는 사람들도 사역에 위기를 맞이했던 것을 압니다. 모세(민 11:15), 엘리야 선지자(왕상 19:4), 요나 선지자(욘 4:3)도 하나님 앞에서 죽고 싶다고 기도드렸던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지금은 개척교회가 자립해서 조직교회가 되는 것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존 교회들의 성도들 숫자가 줄어들고, 고령화되고, 교회 예산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 사역지에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는 목회자나 장로님들이 모이는 당회가 존경받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맙시다. 구약에 나오는 다니엘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는 포로지에서 소명을 받은 선지자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패역한 백성들의 남은 그루터기를 위해서 소명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말기에 소명을 받았습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다윗 왕조의 왕들이 사라지고, 성전마저 불타는 현실을 직면한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정말 선지자로 소명 받기를 싫어했고, 거절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끌려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르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사역을 잘 감당하였다”로 예레미야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의 고백록

그래서 탈진한 예레미야,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예레미야, 하나님이 원망스러운 예레미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게 가장 힘을 주었던 예레미야서의 독특한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예레미야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의 고백록’이라고 불리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전부가 소명의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 울부짖고 불평하는 예레미야의 자기고백입니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대개 여섯 부분이 예레미야의 고백에 속합니다.

첫 번째 부분은 11:18~23에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자신의 고향 사람들인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해서 나온 탄식입니다.(렘 11:20) 그때 여호와께서는 아나돗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라 ‘그들을 벌할 해’, 즉 나라가 망하는 날에 일어날 일이라고 합니다. 그 대답의 결국 무엇입니까? 예레미야를 향하여서 지금은 참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렘 11:22, 23)

두 번째 부분은 12:1~6의 말씀입니다. 악인들을 심판하셔서 예레미야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간구합니다.(렘 12:3) 그에게 여호와의 대답이 주어집니다. 그 말씀은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렘 12:5)라고 하십니다. 보행자와 달리는 것이 그렇게 피곤하면 앞으로 말과의 경주를 해야 될 터인데 어떻게 감당하려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기에 조금 후에 간단히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번째는 17:14~18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대적하는 유다의 사람들에 대한 탄식입니다. 예레미야는 “나를 박해하는 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렘 12:5)라고 간구합니다. 사실 이 탄식에 대해서 그 다음에 이어져야 할 여호와의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부분은 18:18~23의 말씀입니다. 이 부분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예레미야는 죽이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간구하지만(렘 18:23), 이 탄식에 대해서도 여호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느꼈을 위기감과 외로움이 피부에 와 닿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20:7~18의 부분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에 구원할 것이라고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렘 1:18,19) 그런데 왜 사역 현장에서는 일마다 하나도 책임지시지 않느냐고 탄식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외침도 이어서 나옵니다.(렘 20:13) 그러나 그는 금방 생일을 저주하는 욥의 탄식과 같은 한탄을 합니다.(렘 20:18)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레미야의 문제에 대해서 여호와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를 예레미야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미루어 보건대 예레미야에게 앞에서 대답하신 내용을 반복해서 기록하지 않았거나, “내가 이미 대답하지 않았느냐”라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입니다.

권면:돌아오라!

오늘은 여호와의 마지막 대답이 나오는 세 번째 탄식을 본문으로 말씀을 간단히 드리려고 합니다. 세 번째 단락은 15:10~21까지의 말씀입니다. 15:10~14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생일을 저주합니다. 그리고 15~18절에서 탄식과 박해하는 자를 보복해 달라는 간구가 나옵니다.(렘 15:15)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그냥 놓아두심에 대해서 속이는 시내(와디)와 같다고 탄식합니다.(렘 15:18)

이 탄식에 대한 여호와의 대답이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은 아주 분명하게 그의 소명에 대해서 대답하시고, 약속도 주어집니다. 그 이후에는 어떤 탄식에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탄식에 대한 마지막 답이었습니다.

먼저 예레미야에게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렘 15:19)라고 격려하며 권고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단어가 ‘돌아오다’입니다. 이 단어는 보통 회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이 단어가 네 번 사용되었으나, 우리 번역에는 세 번 나옵니다. 한번은 ‘이끌어’라고 번역되었지만, 같은 단어입니다. 본문의 권고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예레미야를 부르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스스로 소명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래서 “네가 만일 돌아오면”이라고 권고하십니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도 “너에게로 다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힘들고 어려워 좌절될 때마다 이 말씀이 기억나기를 바랍니다. 그만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 이 말씀이 기억나기를 바랍니다.

먼저는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타협하지 말고 사명의 본질에 충실하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고 하십니다. 절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타협하거나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그들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약속: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라!

돌아오는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렘 15:20,21)라고 예레미야 1장에서 하시던 약속을 다시 재확인 하십니다. 변한 것은 여호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잘 만나 편한 일꾼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반대 원리를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아주 마음이 굳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역자들을 더 강한 ‘견고한 놋 성벽’을 만드셔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힘들고 지칠 때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본문 말씀이 기억나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렘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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