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후손들은 물려받은 유산으로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아가는데,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비루한 생활을 면치 못하고 살아간다. 과연 누가 이런 조국에 충성하고 헌신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가끔씩 뜻있는 역사가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안락과 행복을 희생했던 이들의 명예가, 적어도 그 가족들의 생계와 안전이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라면 더이상 존립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은 대한민국 전체가 아프게 들어야할 진실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개 교회 혹은 총회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등에 지고 험지에서 고생하던 이들이 임무를 성실히 감당하다 복귀했다면, 혹은 사역현장에서 뜻하지 않은 위해를 당하고 말았다면 그들이 포기한 다른 소중한 가치들의 대가를 대신 치러주는 것이 파송기관의 마땅한 도리이다.

이런 책임을 외면하거나 방기하는 것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켜도 된다고 믿는 전체주의적 사고이자 비윤리적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교회가 절대 그리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부분을 소홀히 한다면 서로를 ‘형제’나 ‘동역자’라 지칭하는 우리의 입술은 새빨간 거짓말을 쏟아내는 셈이다.

우리 총회의 많은 부분들이 정비되고 있지만 아직도 허약한 부분들이 남아있다. 순교자와 순직자들에 대한 예우, 특히 열심히 사역하다 은퇴하거나 사고를 당한 선교사들에 대한 대책이 여태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 총회의 구성원들 모두가 진심으로 부끄럽게 여겨야 할 대목이다.

한 은퇴선교사가 병원비를 제대로 치르지 못해 치료를 지속할 수도, 퇴원을 할 수도 없는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다. 선교사가 복음을 위해 헌신한 대가로 희생되어야 했던 가난한 자녀들과, 남편과 동역하다 못지않게 깊은 병에 시달리는 아내가 그 부담까지 함께 져야하는 현실이 온당할까.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 총회의 건강성과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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