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40도를 넘나드는 고열로 의식을 잃고 헛소리를 한다. 길면 2~3일, 짧게는 24시간 만에 숨을 거둔다. 시신에 검은 반점이 나타나기에 흑사병으로도 불린다. 14세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페스트의 증상이다. 1340년대 유럽에서 2000~3000만명,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죽었다.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보여준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까뮈가 1947년 이것을 ‘페스트’라는 작품에 담았다.

최근 중국의 페스트 발병으로 걱정이 커지고 있다. 700년 전 소멸된 것으로 생각한 페스트의 부활. 충격 속에 그 스토리를 다시 떠올린다. 이렇다. 오랑이라는 도시를 강타한 페스트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페스트와 싸우는 사람들의 7~8개월 동안의 이야기. 고된 싸움 끝에 페스트는 사라지고 평온을 되찾는다. 그렇게 페스트를 이긴 것 같지만 작품의 마지막은 의사 베르나르 리외의 다음과 같은 생각을 기록하는 것으로 끝난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외는 그러한 기쁨은 항상 위협을 받으리라는 것을 떠올렸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살아남아 있다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 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고성 마무리다. 페스트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세상 곳곳에 숨어 있다가 인간들의 탐욕에 교훈을 주기 위해 다시 창궐할 수 있다는 암시가 소설의 결말이다. 페스트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다는 메시지다.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그것이 우리 사는 세상에서 죽은 듯해도 숨은 쉬고 있다. 고상해 보이는 심성 깊은 곳에 숨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그러다 언제든지 깨어나 다시 꿈틀거릴 것이라는 암시다. 유럽의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페스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탐욕과 더러운 이기심이다.

이쯤 되면 까뮈는 예언자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페스트보다 더 무서운 욕망이라는 전염병이 이 세상을 다시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을 예언한 것이니까. 우리는 세상이 더럽다고 지적할 자격이 있을까? 교회 곳곳에도, 무엇보다도 내 속에도 이 페스트가 교묘하게 숨어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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