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수능시험을 앞두고 몇 달 전부터 기도하러 오는 교인들이 느는 추세다. 참 다행스럽다. 이렇게라도 기도하니까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시험이 있든, 큰 일이 일어나든, 사방팔방 뛰어다니기만 하고 기도할 생각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렇다.

그런데 고민이 있다. 시험을 앞두고 안수기도를 받고 싶어하는 성도들이 많다. 목사한테 기도 받겠다는데 뭔 고민이냐 싶지만 사실이다. 그렇게 손을 얹고 기도했는데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누구 책임일까? 목사의 영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원망하는 사람이야 있을까 싶지만 괜한 찝찝함이 밀려든다. 성적이 잘나와 원하는 학교에 합격한다면 좋겠지만 그리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모의고사 성적순으로 안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성적이 잘 나올 학생들에게만 기도해서 안수 기도의 능력을 입증(?)하려 한다면 이건 기만일 것이다.

다행히 내 자녀들은 단번에 합격했다. 이것 때문에 그 능력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도 보인다. 그러나 즐겁지만은 않다. 오히려 미안하기도 하다. 자기 자녀라서 더 세게 기도해줬나 싶어서.
기도와 격려를 하며 항상 “심은 대로 거두리라”,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는 말씀을 한다. 별로 큰 격려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실력은 안 되더라도 기도와 안수를 받으면 잘 찍기라도 할 것이라고 말해주지 못해 그렇다. 물론 기도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전교 일등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겨우 합격선을 넘나들더라도 은혜라면 여유롭게 합격할 수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에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또 열심히 기도도 해준다.

그러나 시험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일 수밖에 없다. 진학이든, 취직이든, 자격을 위한 것이든, 시험을 잘 치르는 방법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정직한 열매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동화 속의 ‘도깨비 방망이’처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실수 없이 공부한 대로 실력을 발휘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먼 훗날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성적이 올랐다면 그것은 위험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계속 노력보다는 기도에 매달리는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긴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다른 길을 주시기도 하시겠지만. 그러나 기도조차 하지 않는 세태에 기도 받겠다며 머리 들이대는 그들이 예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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