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1770년 영국에서 ‘네드 러드’(Ned Ludd)라는 소년이 두 대의 방적기를 파괴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파괴 움직임인 ‘러다이트운동’은 그 소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811년 노팅엄 근처에서 시작, 빠르게 퍼진 이 현상은 방적 기계 파괴와 공장 방화 등을 일삼았다.

이것은 역사의 분기점인 산업혁명과 관련된다. 기계화는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방적 산업을 흔들었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숙련공들의 실직이 이어졌다. 굳이 숙련공이 필요 없게 되자 임금이 낮은 비숙련공을 고용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하락했고 높은 물가와 낮은 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그 원인을 기계로 돌리며 그것에 화풀이를 해댔다. 방적기계만이 아니었다. 모든 기계에 대한 인간의 소외감은 극에 달했다.

방적기계는 1775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가능했다.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당연히 이를 응용한 다양한 산업 발전이 뒤따랐다. 영국이 원조였다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자동차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마부들의 저항으로 자동차의 속도를 거의 걷는 수준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자동차의 발전은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에 따라 자동차 기술자들이 독일로 옮겨 가면서 그 덕은 독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형태는 달라도 항상 새로운 변화와 창조적 발전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일자리 때문에 기계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은 그 발전만 늦췄을 뿐 기계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기계의 발달이 결국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멀리 못 보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기계조차 없애야 할 원수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나 교회에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 발전적 제안과 움직임이 전통에 묶이거나 다수의 저항 앞에 좌절되는 경우들이 종종 보인다. 총회회관에 대한 발전적 제안도 비용만 낭비한 채 깨졌다. 구더기도, 곰팡이도 무서운 소심증은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에 족쇄를 채운다. 소위 ‘세대차’가 발전적 의식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세대차’가 아닌 ‘의식차’며 기계파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장은 모험적이어도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러면서 다시 도전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나이 60을 훌쩍 넘긴 나도 젊은이들의 창의적이고 거침없는 의식과 도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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